일제에 끌려가 사할린에 버려졌던 할아버지들 1만5000여 명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8월 23일 03시 00분


“그동안 우린 韓日모두에 잊혀진 존재”

인천 연수구 연수동 사할린동포복지관의 사할린 출신 영주귀국자들. 간 나오토 일본 총리담화 이후 “사할린 동포들에 대한 보상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이들은 “이번에도 또 잊혀질 것”이라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왼쪽부터 김옥동, 장병기,장병술 할아버지, 이정희 할머니. 인천=김영국 동아닷컴 객원기자 press82@donga.com
인천 연수구 연수동 사할린동포복지관의 사할린 출신 영주귀국자들. 간 나오토 일본 총리담화 이후 “사할린 동포들에 대한 보상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이들은 “이번에도 또 잊혀질 것”이라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왼쪽부터 김옥동, 장병기,장병술 할아버지, 이정희 할머니. 인천=김영국 동아닷컴 객원기자 press82@donga.com
“마지막까지 월급은 단 한 번도 손에 쥐어보지 못했소. 50년 동안 추운 섬에 버려두더니 이제 와서 성실한 지원이라니….”

20일 인천 연수구 연수동 ‘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서 만난 장병술 할아버지(84)는 광복되던 1945년 8월이 바로 어제였던 것처럼 목청을 높였다. 그는 지금도 분노하고 있다. 1945년 1월, 배를 타고 부산에서 사할린으로 끌려갔지만 그해 8월 뱃길이 끊기자 그곳에서 49년을 살았다. 우여곡절 끝에 1994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일본은 ‘여비’ 외에 아무것도 내놓지 않았다. 장 할아버지는 “일본이 1950년대까지 일본인들은 모두 불러들였지만 조선 사람들은 찾지 않았다”며 “그 세월을 어떻게 보상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 잊혀진 사람들

올해 한일 강제병합 100년과 광복 65주년을 맞아 다시 ‘사할린 할아버지’들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10일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발표한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 8·10 기념 담화 중에서 ‘사할린 한국인 지원’ 내용 때문. 간 총리는 이날 “지금까지 실시해 온 사할린 한국인 지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봉환 지원이라는 인도적 협력은 앞으로도 성실히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총리의 담화에서 ‘사할린 한국인’을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그 ‘피해자’들은 간 총리 발언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약속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1999년 영구 귀국한 장병기 할아버지(86)는 “그저 8월이 되면 항상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또 그렇게 잊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할린 한인은 그동안 한국과 일본 양측 모두에 ‘잊혀진 존재’였다. 광복 전 일본 영토였던 남부 사할린 탄광으로 끌려간 조선인은 1만5000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소련 땅으로 바뀐 그곳에서 이들은 ‘국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일본은 사할린에 살던 마지막 한 명의 일본인까지 본국으로 송환했지만 조선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사할린 할아버지들의 영주귀국을 돕는 대한적십자사 강성문 과장은 “‘버리고 왔다’는 원죄 의식 때문에 일본이 사할린 한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日패망후 자국민들만 송환… 국적없이 반세기 살아
최근 日서 먼저 보상문제 꺼내… 한국도 목소리 내야”

현재 일본은 사죄의 의미가 아니라 ‘인도적 차원’에서 귀국하는 사할린 동포의 항공료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원금마저 지난해 34억 원에서 올해는 19억 원으로 줄었다.

○ 이제는 해결하자

지금이 오히려 사할린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좋은 기회라는 주장도 나온다. 장 할아버지는 “일본이 먼저 보상 문제를 끄집어냈으니 이제 한국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징용 당시 “귀국하면 주겠다”며 돌려주지 않은 월급부터 징용 피해 금액까지, 사할린 한인에 대한 한국 내 여론부터 일어야 한다는 뜻이다. 김상유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 관장은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정리하지 못한 피해자는 원폭 피해자, 정신대 할머니, 그리고 사할린 징용자 등 세 부류가 있다”며 “이분들이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일 간 진정한 ‘과거사 정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 시키려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고 갔으면 나올 때도 다 데리고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갔던 영감도 결국 사할린 땅에 묻혔어. 사과 받는 날까지는 꼭 살 거야.” 1999년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돌아온 이정희 할머니(81)의 목소리가 떨렸다.

인천=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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