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2시 경기 수원시 권선구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5층 강당. 경기적십자 재원전략과 신민호 씨가 먼저 한국어로 인사를 하자 10명의 남편들이 어색한 발음으로 베트남어로 옮겼다. 세 단어밖에 안 되는 짧은 문장이지만 절반가량은 외우지 못해 책상 위 교재를 읽고 있었다.
옆자리의 부인들은 우스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세 살 안팎의 어린아이들도 엄마, 아빠의 모습이 재미있는지 연방 소리를 지르고 웃음을 터뜨렸다. 인사말을 가르치던 신 씨가 “결혼하고 처음 가는 처갓집인데 이 정도 말은 할 줄 알아야죠. 그래야 사위가 사랑받죠”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제야 남편들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경기적십자와 삼성사회봉사단 지원을 받아 30일부터 6박 7일간 고향 나들이에 나서는 베트남 여성, 한국 남성 부부 10쌍과 그 자녀들이다. 이날 사전교육 행사장은 난생 처음 맞게 된 온 가족의 고향 방문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 다문화가족의 따뜻한 겨울여행
이번 고향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베트남 여성 중에는 간혹 친정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남편, 자녀와 함께 온 가족이 고향을 찾기는 10가족 모두 이번이 처음. 한국의 ‘명절 대이동’을 부러워만 했던 이들에게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2006년 1월 결혼한 레티안투 씨(25) 역시 3년 만에 친정을 찾는다. 결혼 후 두 번째 방문이지만 이번 귀향은 남다르다. 3년 전 친오빠가 교통사고로 숨졌을 때 만삭의 몸으로 혼자 장례식에 참석한 뒤 첫 방문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남편 장현준 씨(46)와 딸 수민 양(2)도 함께한다. 레티안투 씨는 “오빠가 사고를 당한 뒤 친정아버지도 계속 병석에 누워 있다”며 “늘 걱정이 많았는데 이번에 가족이 함께 보고 오면 안심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소경섭 씨(42)는 처음 처갓집을 방문한다. 4년 전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 부인 보티빗풍 씨(22)의 집에 갈 예정이었지만 현지에 조류인플루엔자(AI)가 퍼지면서 결국 결혼식만 올리고 한국에 돌아왔다. 이후 몇 번이나 베트남 방문을 계획했지만 그때마다 직장 사정 때문에 이루지 못했다가 이번 방문 대상에 선정됐다. 소 씨는 “꼭 한 번 처갓집에 가고 싶었는데 못가서 아내에게 늘 미안했다”며 “처갓집 식구들을 위한 선물로 가전제품과 생필품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 고향 가족 지원도 추진
경기적십자와 삼성사회봉사단은 지난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2009 희망나눔 아나바다 자선대바자’를 열었다. 이때 거둔 4000여만 원의 수익금 전액이 이번 다문화가족 고향방문에 쓰인다. 지난해에는 세 가족이 혜택을 받았지만 올해는 10가족으로 늘었다. 경기적십자는 내년에도 다문화가정을 위한 다양한 자선행사를 열 계획이다. 특히 단순한 위로방문뿐 아니라 고향가족의 자활을 위한 장기 지원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경기적십자 재원전략과 신민호 씨는 “매년 자선바자회에서 얻은 수익금 전액을 다문화가정을 위해 사용할 방침”이라며 “질병이나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현지 가족들을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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