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여성들 ‘희망날개봉사단’ 노인 요양원서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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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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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에 두고온 부모님이라 생각… 힘든 줄 몰라요”
‘나도 남한서 필요한 사람’ “자부심도 덤으로 얻어요”


17일 탈북 여성들로 이뤄진 봉사단체 ‘희망날개봉사단’이 경기 부천시 원미구 상동에 위치한 노인요양원 ‘은혜실버센터’를 찾았다. 목욕봉사에 나선 탈북 여성들은 치매나 뇌중풍(뇌졸중) 등을 앓는 노인들을 꼼꼼하게 씻겼다. 부천=우정열 기자
17일 탈북 여성들로 이뤄진 봉사단체 ‘희망날개봉사단’이 경기 부천시 원미구 상동에 위치한 노인요양원 ‘은혜실버센터’를 찾았다. 목욕봉사에 나선 탈북 여성들은 치매나 뇌중풍(뇌졸중) 등을 앓는 노인들을 꼼꼼하게 씻겼다. 부천=우정열 기자
“어르신, 물은 뜨겁지 않으세요? 그럼 이제 시작합니다. 거기 목 뒤로 넘어가지 않게 잘 받쳐주세요. 코에 끼운 호스에 물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시고요.”

17일 경기 부천시 원미구 상동에 위치한 노인요양원 ‘은혜실버센터’ 세면실에서는 초록색 조끼 차림의 여성 10여 명의 손길이 분주히 움직였다. 이들은 시민단체인 탈북여성인권 연대 소속의 탈북 여성들로 이뤄진 봉사단체 ‘희망날개봉사단’ 단원들. 이날 이들은 치매나 뇌중풍(뇌졸중) 등을 앓는 노인들이 요양을 하는 이 시설에서 목욕봉사를 하기 위해 모였다. 전국을 꽁꽁 얼려버린 동장군의 위세도 가깝게는 인천부터 멀리는 서울에서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두세 차례씩 갈아타고 이곳을 찾은 이들의 발길을 묶지는 못했다. 이날 이들의 개운한 목욕봉사 서비스를 받은 노인은 20여 명이었다.

9월 “남한 사회에 희망을 전하는 날개가 되자”는 취지로 결성된 희망날개봉사단은 매달 한 차례씩 요양시설 등을 돌며 목욕봉사, 급식봉사, 이발봉사, 노래와 춤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단원들은 30∼50대 탈북여성이 주축을 이루고 있고 가정주부, 미용실 주인, 결혼소개소 사장 등 직업도 다양하다.

봉사단장 김인실 씨(52)는 “처음 북에서 왔다는 얘기에 어색해하던 어르신들도 나중에는 ‘남한 생활도 고될 텐데 이렇게 봉사를 다 오냐’고 묻기도 하고 ‘내 고향이 어떻게 변했냐’라고 묻는 실향민도 있다”며 “나중에는 짧은 시간에 정이 들어서 손을 붙잡고 가지 말라고 할 때는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목욕봉사는 한눈에 봐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몸을 못 가누는 중증 환자는 두세 명이 달라붙어야 겨우 몸을 세워 등이나 엉덩이를 닦을 수 있었다. 단원들의 얼굴은 금세 땀으로 번들거렸다. 김 단장은 “치매 노인 중에는 종종 ‘목욕하기 싫다’며 주먹을 날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갑자기 세면장에 역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휠체어에 앉은 채로 목욕 중이던 한 노인이 예고도 없이 대변을 본 것. 하지만 단원들은 싫은 기색도 없이 휴지와 기저귀로 변을 치우고 목욕을 마무리했다. 북한 청진 출신 봉사단원 강옥실 씨(41)는 “더럽다는 생각요? 북에 두고 온 우리 아버지가 75세인데, ‘그냥 내 아버지다’ 생각하면 냄새 같은 것 신경 안 쓰여요”라고 말했다. 정순임 씨(48)도 “노인들을 만나면 북에 있는 부모님 생각이 난다”며 “북에 두고 온 어머님 얼굴도 닦아드리지 못하는 불효녀가 이렇게라도 마음을 달래야 하지 않겠느냐”며 촉촉해진 눈가를 훔쳤다.

희망날개봉사단원들은 봉사를 통해 얻는 것이 더 많다고 입을 모은다. 김여주 씨(42)는 “북송 위협 속에서 몇 년씩 타지를 떠돌다 보면 남한 땅을 밟아도 마음의 문을 열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봉사활동을 하면 ‘나도 이 나라에서 필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마음의 문이 열리는 느낌을 받아요. 탈북 선배들이랑 수다 떨면서 남한 사회 적응에 필요한 정보도 공유할 수 있고요”라고 했다.

지역사회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은혜실버센터 문드보라 원장(54)은 “외롭고 정에 굶주린 어르신들이 봉사단원을 보면 매우 좋아하신다”며 “다음 번 공동 생일잔치 때는 봉사단원들에게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노래도 불러 달라고 부탁드리려 한다”고 말했다.

부천=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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