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느라 잊었던 웨딩드레스 소원 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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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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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주민-中동포 등 8쌍 합동결혼식 올리던 날

22일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공항웨딩문화원에서 탈북자 8쌍의 합동결혼식이 열렸다. 북한이탈주민 부부, 북한이탈주민-중국동포 부부 등으로 구성된 8쌍은 그동안 형편이 어렵거나 한국 정착에 바빠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다가 서울 강서경찰서와 강서구청의 후원으로 이날 결혼식을 올렸다. 전영한 기자
22일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공항웨딩문화원에서 탈북자 8쌍의 합동결혼식이 열렸다. 북한이탈주민 부부, 북한이탈주민-중국동포 부부 등으로 구성된 8쌍은 그동안 형편이 어렵거나 한국 정착에 바빠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다가 서울 강서경찰서와 강서구청의 후원으로 이날 결혼식을 올렸다. 전영한 기자
“좋은 때, 좋은 날 맺어진 사랑, 한 쌍의 꽃으로 활짝 피었네….”

22일 오후 5시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공항웨딩문화원 1층. ‘늦깎이’ 신랑신부 16명이 예식장에 들어선 가운데 북한 노래 ‘축복’이 울려 퍼졌다. 북한이탈주민 부부, 북한이탈주민-중국동포 부부 등으로 구성된 8쌍은 그동안 형편이 어렵거나 한국 정착에 바빠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다가 서울 강서경찰서와 강서구청의 후원으로 이날 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상아색 웨딩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송미영(가명·33) 씨가 남편 한지훈(가명·37) 씨를 붙잡은 손에 힘을 줬다. 송 씨는 2002년 2월 고향 북한 황해도 한 도시의 기업소(회사)에서 11년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한 씨를 만났다. 훤칠한 키와 다부진 인상이 송 씨의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만난 지 두 달 만에 이들은 송 씨의 집에서 살림을 차렸다.

생활은 고달팠다. 송 씨 아버지와 오빠는 1997년부터 식량 등을 구하기 위해 중국에 있는 친척을 만나다가 세 번이나 붙잡혀 북송됐다. 송 씨 아버지는 다시 두만강을 건너다 물에 떠내려갔고, 가족은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어머니는 뇌혈전증이 악화돼 몸 반쪽을 쓰지 못했다. 형편이 어려운 것은 한 씨 집안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에서는 결혼할 때 신랑, 신부의 집안에서 잔치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생일이 같은 송 씨 부부는 서로의 생일을 기념하며 저녁 한 끼를 제대로 차려먹은 것으로 결혼 잔치를 대신했다. 송 씨는 “동네에 결혼 잔치를 하는 집이 있으면 왠지 창피해 먼 길로 돌아 다녔다”며 “결혼사진을 한 장 갖는 게 소원이었다”고 말했다.

먼저 탈북해 한국에 있던 송 씨 오빠가 2007년 은밀히 사람을 보내 “길을 만들어 놨으니 한국으로 오라”고 전했다. 비무장지대(DMZ) 부근 민통선에서 복무하며 대북 선전 방송을 통해 한국의 실상을 알고 있던 남편 한 씨도 “한 번 사는데 자유롭게 살자”며 탈북을 결심했다. 송 씨 부부는 그해 5월 함경북도 무산군을 통해 두만강을 건넜다. 남편 한 씨가 네 살배기 아들을 안았고 송 씨는 남편 한 씨의 손을 꽉 붙들었다. 배 속에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부부는 그해 가을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했다. 정착 2년째인 지금 남편 한 씨는 이삿짐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새벽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올 때도 많고 지방에 출장도 자주 간다. 송 씨는 미용실에서 네일아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송 씨 손톱에 곱게 바른 매니큐어는 함께 네일아트를 배운 동료들의 축하 선물이다.

이날 결혼식에서 탈북 때 배 속에 있던 미옥이(가명·현재 생후 20개월)는 울지 않고 신기한 듯 엄마 아빠를 바라봤다. 한 씨에게 안겨 두만강을 건넜던 영태(가명·6) 군은 턱시도를 차려입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주례를 맡은 김귀찬 강서경찰서장은 “오늘 합동결혼식의 부부 8쌍은 험난함을 헤쳐 여기까지 오게 된 만큼 더 큰 행운이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결혼식을 마친 뒤 송 씨는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가 이 모습을 보셨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눈물을 흘렸다. 8쌍의 부부는 인천 모 해수욕장의 한 호텔로 1박 2일의 짧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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