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141>‘愛人敬天’ 도전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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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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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신 회장(앞줄 오른쪽)이 친구의 손을 잡고 춤추는 모습. 2008년 10월 16일 경기 가평군 AK리조트에서 열린 경기여고 43회 동창회에서다. 장회장은 친구와 함께할 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웃는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앞줄 오른쪽)이 친구의 손을 잡고 춤추는 모습. 2008년 10월 16일 경기 가평군 AK리조트에서 열린 경기여고 43회 동창회에서다. 장회장은 친구와 함께할 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웃는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64〉평생의 동반자, 나의 친구들
60년지기 친구들과 매달 모임
올해 4월 암수술 받으려 입원때
매일 병실지킨 친구들 덕분에 행복
네 아이의 엄마로, 애경그룹의 경영자로, 남편 없이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부지불식간에 겉으로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습관이 들었다. 비즈니스 협상에서는 웃는 모습을 보이면 상대가 나를 만만하게 볼 수 있어 무표정한 얼굴이 유리했다. 생각한 대로 임직원이 움직여주지 않아 속이 상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아야 영(令)이 서는 듯 보였다. 주변 환경이 나를 강인해 보이도록 요구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레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활짝 웃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오랜 친구들이다. 혜화초등학교, 경기고녀(지금의 경기여중, 경기여고) 시절 친구로 거의 평생을 함께했다. 학창시절 반장을 많이 맡았고 비교적 체구가 큰 편이어서 나를 따르는 친구가 많았다. 60년 지기 친구 11명과 ‘투투’라는 모임을 만들어 매월 둘째 주 목요일에 만난다. 최근 들어서는 매월 둘째 주 토요일로 모임 날짜를 바꿨지만 여전히 모임을 갖고 있다.

일흔 넘은 할머니들이 카페에 모여 커피를 마시면서 10대 소녀처럼 학창시절 추억담을 나누며 수다를 떤다. 여기서는 나도 ‘장 회장!’이 아니라 ‘영신아!’로 불린다. 자신이 가진 타이틀을 모두 버리고 서로 이름을 부르며 반말로 얘기한다. 이 자리에서만큼은 동심으로 돌아가 너무 행복하고 즐겁다.

낮밤 가리지 않고 만나는 친구도 여럿 있다. 대한도시가스 회장으로 있는 노승현, 뉴욕대 교수와 아주대 심리학과 과장을 지낸 안한숙, 청와대 비서실에서 초대 여성국장으로 일했던 나은실, 수녀를 꿈꾸었으나 이를 이루지 못해 평생을 사회와 남을 위해 봉사하며 수녀처럼 사는 신하순, 주러시아대사를 지낸 이인호 KAIST 김보정 석좌교수 등 열거하기 힘들다. 뭇 사람이 보기에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친구들이지만, 우리에겐 그냥 허물없는 친구일 뿐이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무작정 전화해서 하소연하고,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전화해 만나는 막역한 사이다.

나이가 들고 나서는 경기여고 동기모임을 자주 하는데 한 번 모이면 100명이나 모일 정도로 끈끈하다. 청평에 애경개발에서 운영하는 AK리조트가 있는데 몇 번 동기모임을 열었다. 모여서 밥도 먹고 소녀시절처럼 레크리에이션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은 “걸을 수만 있으면 다 나오자”고 입을 모은다. 봄이나 가을이 되면 “영신이가 모이자고 안 그러나? 그럴 때가 됐는데”라며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라도 한턱 낼 수 있음에 늘 감사한다.

나이가 들면 친구의 존재가 새로워진다. 최근 부쩍 친구들이 고맙고 감사한 일이 있었다. 3월 말에 정기건강검진을 하다가 유방암 진단을 받고 4월에 수술을 받았다. 재발을 막으려 임파선을 떼어내고 수술 이후 서른 번 정도 방사선치료를 받는 등 5개월가량 치료를 받았다. 항암치료는 암세포만 죽이는 게 아니라 정상세포마저 죽여서 무척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을 친구들이 함께 나눠줬다.

내 성격상 발병 사실을 알고도 담담했고 조용히 수술을 받을 작정이었다. 수술 날짜를 받아놓은 이틀 전에도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왔다. 수술 후 병실에 누워 있는데 친구들이 몰려왔다. 모두 사색이 되어 서운하다고 아우성이었다.

친구들은 아침부터 찾아와 내가 잠들기 전까지 같이 밥 먹고 얘기하고 떠들썩하게 있다가 돌아갔다. 몸이 아픈 것을 잊게 해주겠다는 배려였다. 나는 “바쁜 사람들이 여기 이러고 있으면 어쩌냐. 다들 볼일이 있을 것 아니냐. 괜찮으니 가 보라”고 말려봤지만 “오늘은 전혀 일이 없다”면서 퇴원할 때까지 쭉 그렇게 있었다. 가족이야 그럴 수 있지만,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주고 돌봐주는 친구들이 어디 있으랴 싶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있다 보면 아픈 몸 때문에 우울해진 기분이 한결 나아지곤 했다. 기분이 명랑해지니 몸도 빨리 나은 듯하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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