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재료로 화장품을 만드는 한 업체. 이 회사 직원들의 제품 디자인 회의가 한창이다. 한 꼬마 아이가 자신이 디자인 한 제품에 대해 설명한다. ‘(주)다비움 코스메틱’ 2년차 ‘수석 디자이너’ 김주한(만12세) 군이다. 또래 아이들이 집 근처 학교로 등교 할 때 출근 준비에 바쁜 김 군을 그가 일하는 강남 논현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군은 “그림 그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며 부모님을 설득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의사 출신이었던 부모는 “조언은 하되 아이의 의견이 최우선이다”라며 김 군의 생각을 최대한 존중했다. 김 군의 어린 시절 장난감은 색연필과 스케치북이 전부였다. 그 흔한 자동차나 로봇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그림만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색연필 하나로 뭐든지 그려냈다. 그림의 주제는 꽃과 곤충, 동물 등 자연 속에 있는 것들이었다. 이런 김 군을 지켜보는 부모는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시켜보자”며 유명 화가를 찾아 나섰다. 김 군의 그림을 본 화가는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며 “주한이는 교육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 했다. 부모는 사사를 부탁했지만 화가는 아이의 창의성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에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그 뒤로 김 군은 각종 디자인 공모전에 응모했다. 결과는 수차례 입상으로 그의 실력을 입증했다. 2008년에 입상한 한 공모전의 시상 관계자는 “12살 아이의 디자인으로는 믿기지 않는다”며 “디자인 작업 과정을 공개해 달라”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 군의 또래 아이들이 등교할 때 김 군은 회사에 출근한다. 김 군은 2007년 12월. 어머니 윤대경 씨가 기획이사로 근무하는 천연 화장품 회사에 입사하며 국내 ‘최연소 디자이너’라는 명함을 얻었다. 또한 이 회사에 디자인팀 ‘수석 디자이너’이다. 어머니 윤 씨는 “집에서 그림만 그리던 아이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며 “주한이가 그리는 주제와 저희 제품이 잘 맞고, 12살 아이의 순수함이 제품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윤 씨의 예상은 적중했다. 얼마 전 김 군이 디자인 한 제품이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디자인 진흥원에서 선정하는 GD(Good Design)마크를 획득하며 우수상을 받았다. 이 마크는 디자인의 우수성이 인정된 상품에만 부여하는 제도다. 이 때문에 매출도 급상승 하며 김 군은 회사의 ‘에이스’가 됐다. 매출에 톡톡히 한 몫 하는 김 군의 월급은 얼마나 될까. 김 군은 “월급 대신 제품 1개가 팔릴 때마다 100원씩 적립해 결식어린이 돕기 기금으로 내고 있다”라며 “지난해 성탄절에 광주의 한 교회에서 열린 세계 기아 돕기 선교를 위한 바자회에도 성금을 냈고, 지난 3월 홍천의 어린이집에도 기부를 했다”라고 말했다.
김 군은 앞으로도 학교에는 다니지 않을 생각이다. 새로운 디자인에 도전하기 위해 야근을 ‘밥 먹 듯’한다. 또래 아이들의 옷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다. 김 군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한다”며 “제가 디자인 한 제품이 잘 팔릴 때 너무 뿌듯하다”라면서 오늘도 야근을 마다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꿈을 그리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 김 군은 “그냥 지금 제가 디자인 하는 것들을 ‘디자이너’로서 인정받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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