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만에 실현된 ‘채용 약속’

  • 입력 2008년 7월 31일 02시 55분


1979년 한진고속버스 안에서 태어난 뒤 29년 만에 ㈜한진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변한복 씨가 한진 소속 컨테이너 차량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산=최재호 기자
1979년 한진고속버스 안에서 태어난 뒤 29년 만에 ㈜한진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변한복 씨가 한진 소속 컨테이너 차량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산=최재호 기자
1979년 한진고속버스서 태어난 변한복 씨 ㈜한진 입사

故조중훈 당시 회장 “한진맨으로 키우겠다” 다짐 현실로

1979년 8월 15일 광복절. 부산에서 출발한 전주행 한진고속버스 안에서 갑자기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쌍둥이 형제가 태어난 것이다. 당시 32세이던 이수진(61) 씨는 광복절 휴일을 맞아 만삭의 몸으로 전북 전주시의 친정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광복절 휴일 승객이 많아 입석으로 버스에 무거운 몸을 실어야 했어요. 고맙게도 주변 승객이 양보를 해주셔서 자리에 앉았는데 갑자기 배가 살살 아프지 뭡니까.”

쌍둥이 신생아를 실은 고속버스는 순식간에 응급차로 바뀌었다. 승객들의 양해로 만원 고속버스는 경북 김천시의 한 병원으로 직행했다.

당시 한진그룹을 이끌던 조중훈 한진 회장은 이 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 “두 형제는 우리 회사의 복(福)이니 잘 키워주면 한진의 인재로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조 회장은 채용 약속과 함께 비서진을 통해 기저귀와 분유 등 신생아 용품을 전달했다.

한진 측의 정성에 감동한 어머니 이 씨는 쌍둥이 가운데 형은 한진의 ‘한’과 광복절의 ‘복’을 따 ‘한복’으로, 동생은 회사명인 ‘한진’으로 이름을 지었다.

그때부터 약 29년이 흐른 올해 7월. 마침내 약속은 현실로 이뤄졌다. 쌍둥이 가운데 형인 변한복(29) 씨가 과거 한진고속버스 사업을 맡았던 ㈜한진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한진맨’이 됐다.

한복 씨의 채용 과정도 눈길을 끈다.

3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고 조 회장도 작고해 한진 안에서도 당시의 약속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복 씨는 “어머니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용기를 내서 당시의 상황과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출생 관련 소견서를 서울 본사에 제출했더니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며 “열심히 배워서 약속을 지킨 회사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경남 양산시의 ㈜한진 내륙컨테이너기지에서 배차와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이 씨는 “어려운 형편에 두 아들을 전문대에 보내고 투병 중인 남편을 돌보면서 힘들게 살았는데 최근 큰 선물을 받아서 감사하고 뿌듯하다”며 활짝 웃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