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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31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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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에도 1억 내놔… “애국지사 후손에 힘됐으면”
“애국지사의 후손들이 공부만큼은 걱정 없이 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박원재(57·사진) 우리집 출장연회 대표가 애국지사의 후손을 위해 28일 5000만 원을 동아꿈나무재단에 내놨다. 그는 2006년에도 동아꿈나무재단에 1억 원을 기탁했다.
박 씨의 아버지는 군자금 마련을 위해 평안남도 성천군 금융조합을 습격하는 등 맹활약을 하다 1919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평양형무소에서 12년을 복역한 뒤 가석방됐던 독립운동가 박구진 선생이다.
6·25전쟁 중에 병으로 숨진 박 선생은 가족이 20여 년간 아무리 자료를 찾아 헤매도 독립운동을 했음을 증명하는 기록이 나오지 않아 1994년까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동아일보 1994년 8월 16일자에 박 씨의 가족이 독립운동 기록을 찾는다는 사연이 소개된 지 일주일 만에 보훈처에서 자료가 발견돼 1995년 애국장을 받고 1996년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5000만 원을 선뜻 내놓은 박 씨는 “아버지처럼 나라를 위해 군자금 마련은 못할지언정 번 돈의 일부를 나보다 어려운 애국지사의 후손을 위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와 가난을 견뎌온 박 씨는 “누구보다 애국지사의 후손이 겪는 고충을 잘 안다”고 했다.
“가난을 대물림 받아서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하게 되면 마음은 ‘조상의 긍지를 잃지 말자’ 하면서도 원망이 차오르죠.”
박 씨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밝히면 주변에서 좋은 조상을 뒀다는 관심이 아니라 도리어 ‘다루기 힘든 사람’이라는 편견이 따라다녔다”며 “아들이 훈련소에 입대할 때 나도 모르게 ‘너는 할아버지 같은 상황이라도 나서지 마라’라는 말이 나왔다”면서 씁쓸해했다.
조상에 대한 원망에 빠져들기 쉬운 애국지사의 후손들이 이 돈으로 공부를 하며 용기를 되찾았으면 하는 게 박 씨의 간절한 바람이다.
박 씨는 앞으로도 뷔페 사업으로 번 돈으로 꾸준히 기부를 해 아버지의 이름을 딴 ‘박구진 장학금’을 애국지사의 후손 학생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박 씨는 “‘일제강점기에 애국자 아닌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정말 힘이 빠진다”며 “후손들이 어렵더라도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사회가 관심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