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초청으로 방한한 헬렌 수녀는 이날 김 추기경과 만나 “사형제가 사회 정의의 실현 수단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미국에서 대부분의 사형수들은 가난한 사람들로 밝혀졌으며, 한 대학생단체의 조사 결과 119명이 사형 언도를 받았다가 무죄로 풀려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예수님도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법을 부정했다”며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다고 해서 가해자의 목숨을 똑같이 빼앗겠다면 이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법과 다를 게 없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은 과거 자신들이 목격했던 사형수들의 최후 모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사형 폐지론에 공감했다. 헬렌 수녀는 미국에서 사형수 6명을 사형 집행시간까지 동행하며 영적인 상담을 해주고, 살인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 일하기도 했다.
김 추기경은 이날 자리를 함께한 고정원(高貞元·63) 씨가 연쇄살인범 유영철에게 가족을 잃은 후 천주교 신자가 돼 그를 용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하며 축복을 내렸다.
이날 접견에는 열린우리당 유인태(柳寅泰), 한나라당 김형오(金炯旿), 민주노동당 노회찬(魯會燦) 의원 등 ‘사형제폐지특별법안’ 발의를 주도하고 있는 국회의원 3명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돼 있는 상태다.
헬렌 수녀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대성당에서 ‘21세기 사형 폐지: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화해와 용서’를 주제로 강연했으며 21일 출국한다. 헬렌 수녀는 지난해 12월 두 번째 저서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펴냈다.
윤정국 문화전문 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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