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2년 6월 2일 23시 33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개막식 이튿날인 1일 저녁, 강남 인터콘티넨탈호텔 숙소에서 만난 그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반쯤 파묻은 채 “솔직히 말해 세네갈팀이 이긴 것에 내심 희열을 느꼈다”며 자신의 독특한 ‘축구 독법(讀法)’을 밝혔다.
“세계화의 물결 가운데 승자는 늘 부강한 나라들이죠. 그렇지만 축구에서는 달라요. 가난한 나라도 이길 수 있죠. 현실에서 도저히 우위를 차지할 수 없는 빈국들이 승리를 맛볼 수 있는 겁니다. 거기에 카타르시스적 쾌감이 있어요.”
프랑스 중상류층 사이에선 축구가 그리 인기 있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축구 선수들은 빈곤층 저학력 출신들이 많아요. 98년 월드컵 이후 관심이 늘었지만 당시 프랑스 정부는 월드컵 대표팀이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는데 주목했어요. 프랑스는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산다는 ‘홍보’ 효과를 노렸던 겁니다.”
-88년 서울 올림픽이 홍보 측면에서 실패했다고 한때 비판하신 적이 있는데 이번 월드컵은….
“개막식은 한편의 아름다운 오페라 같았어요. 전통 음악과 정서를 담은 공연에서 시작해 점차 현대적 감각의 공연으로 옮겨간 것은 매우 훌륭한 공간적, 시각적 구성이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는 데 크게 기여할 겁니다.”
-함께 방한한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이번 월드컵의 한일 공동개최가 양국 간에 사회 문화적으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양국 관계를 개선시키는 결정적 계기는 아니더라도 촉진제 역할은 할 겁니다. 한일관계는 ‘화해(reconciliation)’하는 게 아닙니다. 화해란 양측에 잘못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죠. 일본의 역사, 음식 모두가 한국으로부터 전해졌어요. 그런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진실을 왜곡한 쪽은 일본입니다. 하지만 수년전부터 달라지고 있어요. 일본 왕실이 자신들의 조상은 조선인이라고 인정하는 등 얽힌 실타래가 풀리고 있어요.”
기 소르망은 개고기 식용에 대해서도 포용적이다. 브리지트 바르도의 한국 개고기 문화 비판에 대해 다소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브리지트 바르도는 프랑스에서 나치주의를 신봉하는 극우 파시스트예요. 개고기는 물론 다른 문제들과 관련해서도 그를 논쟁의 대상자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개고기를 먹고 안 먹고는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거죠. 단 개가 가혹하게 도살당하는 것은 보편적 가치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외국에서 존중해주지 않는데….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보편적으로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는 항상 가장 자극적인 부문만 떠올리죠. 서방 사람들이 한국 하면 아직도 전쟁과 개고기를 떠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죠. 한국의 긍정적인 문화와 현대성을 적극 홍보하면 부당한 비판들은 목소리를 잃게 됩니다.”
그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1976년 프랑스에서 열린 백남준의 전시회가 계기가 됐어요. 그의 작품들은 현대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어요. 백남준이 말하더군요. TV수상기를 갖고 일하는 것은 TV를 대거 수출하는 당시 한국의 경제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고, 전통 한국의 모습은 과거 샤머니즘의 색깔을 사용해 표현했다고요. 백남준은 한국 정부보다 더 훌륭하게 한국을 홍보했어요.”
-한국에 곧 지방선거가 있는데 조언을 한다면….
“한국은 민주주의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입니다. 민주화의 시간이 짧은 거죠. ‘좌파〓빨갱이’로 모는 냉전 시절의 잔재가 남아 있어요. 가끔 한국의 재벌 총수들을 만나는데 그들에게서 마치 작은 왕국의 황제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한국인들의 삶 곳곳에 권위주의 문화가 남아 있는 거죠. 걸림돌입니다.”
그는 달변이었다. 말에 거침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따지듯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일각에서 ‘언론에 너무 자주 얼굴을 내비치는 지식인’ 또는 ‘언론의 단골손님’이라는 비판이 있는데….
“글쎄요…. 나는 연구나 저술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절대 언론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요. 방해나 영향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시즌에 따라 활동하는 록스타와 같다고나 할까요. 나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같고 있는 대중과 지식인들을 대변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껴요. 이를 위해 미디어를 활용하는 거죠.”
기 소르망은 1944년 프랑스 로트 에 가론 지방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파리국립행정대학원(ENA) 졸업 후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모스크바 대학, 파리 정치학교 초빙 교수를 역임한 그는 ‘문명충돌론’을 둘러싸고 새뮤얼 헌팅턴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현재 파리에 인접한 불로뉴 비양크루시 부시장으로도 일하고 있으며 ‘기아 해결을 위한 국제행동’이란 단체도 만들었다. 저서로는 ‘열린 세계와 문화창조’ ‘사회주의 종말의 여로’ ‘자유주의적 해결’ ‘프랑스에서의 아름다운 날’ 등 10여권이 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