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미디어센터 준공]21세기 멀티미디어 문화의 중심

  • 입력 2000년 1월 3일 07시 58분


동아미디어센터는 21세기 멀티미디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최첨단 복합 인텔리전트 빌딩이다.

지상 21층과 지하 5층 연건평 7022평인 동아미디어센터는 건물 전체가 초고속 통신망으로 연결되었으며 인공위성을 통한 방송 송수신은 물론 인터넷 주문형영상뉴스 등 멀티미디어 서비스가 가능하다.

뉴미디어 벤처기업을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도 너끈히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국내 몇안되는 복합 정보통신 건물이다.

동아미디어센터는 동아일보 광화문사옥(일민미술관)과 함께 위치해 20세기 미디어와 21세기 뉴미디어가 함께 어우러진 미디어 복합공간(Media Complex)을 구성한다.

동아미디어센터 안에는 올해중 국내 최초의 신문박물관이 개관된다. 신문박물관은 한국언론사와 21세기 미래 언론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미디어 교육장으로 기능할 것이다.

동아미디어센터 원형공간 천장에 매달린 비디오아트 ‘열매 눈’은 1백45개의 비디오 모니터로 구성된 최첨단 조형물로 개관과 동시에 행인들의 눈길을 붙잡고 있다. 정직하고 투명한 언론의 사명을 강조하기 위해 외벽을 투명한 유리로 제작해 야간에는 커다란 불기둥처럼 보이는 동아미디어센터 건물 자체도 이미 서울도심의 명물로 꼽히기 시작했다.

동아미디어센터 앞 광장은 한국전쟁이후부터 현재까지 50년 가까이 매일 해질녘에 신문가판시장이 열리는 곳. 일명 신문 파시(波市)가 열리는 곳이어서 우리나라에서 다음날 신문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

동아미디어센터는 1926년 건립된 한국언론사의 최고(最古) 건물이며 현재 일민미술관으로 사용중인 동아일보 광화문 구사옥과 함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조원표 기자>cwp@donga.com

▼동아일보 사옥 변천사▼

1920년 4월1일 민족 민주 문화주의를 표방하며 탄생한 동아일보의 첫 사옥은 서울 화동 138번지 한옥건물이었다.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선생 등 민족 세력은 구 중앙학교 건물이던 이곳에 ‘주식회사 동아일보 창립사무소’ 간판을 내걸었다. 화동사옥은 나라잃은 한민족의 울분을 담아내고 민족혼을 되살린 민족신문의 모태였다.

◇仁村선생 "총독부 감시"◇

1926년 동아일보사는 광화문에 3층 규모로 새사옥을 지었다.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는 “총독부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동아일보가 광화문 한복판에 자리잡아야 한다”는 인촌선생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광화문 사옥은 1992년까지 66년동안 일제에 대한 항거,해방후 독재정권과의 투쟁,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진 한국 근현대사의 산증인이었다.

광화문 사옥은 서울시 문화재로 선정된 6개 건물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조간화-CTS 도입◇

이후 사세가 커지고 신문제작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동아일보사는 광화문 사옥을 6층까지 증축했으나 고속 윤전기의 도입 등 현대적 제작기반을 갖추기 위해 1992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지하 7층,지상 17층 규모의 충정로 사옥을 신축했다.

7년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동아일보 충정로시대는 조간화,컴퓨터제작시스템(CTS) 도입, 가로쓰기, 섹션신문 등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룬 시기였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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