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랜드 악몽' 체육훈장 반납한 김순덕씨가족 끝내 이민

  • 입력 1999년 11월 2일 20시 22분


“대형사고가 난지 반년도 채 안돼 수십명의 어린 목숨이 거듭 희생되는 이런 곳에서는 정말 마음놓고 아이를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요.”

경기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참사로 아들 도현군(6)을 잃은 뒤 훈장을 반납했던 전 필드하키 여자국가대표 김순덕(金順德·33)씨 가족이 끝내 해외로 이민을 떠나기로 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김씨는 남편 김성하(金聖夏·38)씨와 함께 둘째아들 태현군(4)을 데리고 12일 뉴질랜드로 영구이민을 떠날 계획이라고 2일 밝혔다.

95년 두 아들을 데리고 뉴질랜드로 떠나 3년을 보냈던 김씨부부는 지난해 4월 아이들과 함께 일시 귀국했다. 5년정도 지내면서 아이들이 한국의 말과 문화를 익히게 한 뒤 다시 돌아갈 생각이던 김씨 부부는 한동안 도현이가 유치원에서 우리말을 배워가며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닥친 참사로 아들을 잃은 김씨 부부는 그 후 눈물로 세월을 보내며 정상적인 생활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남편은 사고 직후 다니던 법무사 사무실을 그만두고 밤마다 술로 고통을 잊어야 했고 둘째 태현이는 집밖의 놀이터조차 나가려 들지 않을 만큼 충격을 받아 부모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한국에 오지만 않았더라면’하는 생각에 괴로워 하던 김씨부부는 정부의 무성의한 사고처리과정에 거듭 실망하면서 8월에는 부인 김씨가 선수시절 정부로부터 받았던 모든 훈장을 고스란히 반납하기도 했다.

결국 도현이를 잃은 상처에서 벗어나고 남은 태현이라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선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던 김씨 부부는 지난달 30일 발생한 인천 호프집화재참사의 소식을 접한 뒤 다시 한번 분노의 눈물을 삼키며 이민 결심을 하루 빨리 실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김씨 부부는 “다른 유족들도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심정은 우리와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자신들만 떠나는 것이 못내 미안할 정도라고 말했다.

“사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지금처럼 정신차리지 못하는 어른들이 있는 한 어이없는 사고로 인한 어린 생명의 희생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한편 김씨부부를 비롯해 씨랜드참사유족회 소속 유족 20여명은 이날 그동안 정부로부터 받은 보상금 가운데 1억3000여만원을 모아 가칭 ‘씨랜드어린이안전재단’을 만들어 어린이 안전사고예방 등에 앞장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