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화제]황혼의 갈림길 선 정주영-세영형제

입력 1999-03-03 19:21수정 2009-09-2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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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 12월, 형은 아우를 불러 어려운 말을 꺼냈다.

“세영아, 자동차 사업을 새로 해야겠는데 네가 그걸 맡아줄 수 있겠느냐.”

50을 갓 넘긴 정주영(鄭周永)회장은 나이어린 동생에게 부탁하듯 말했다.

“형님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로부터 32년. 형은 동생을 다시불러 더 어려운 말을 꺼내야 했다. “이젠 네가 그만 쉴 때가 된 것 같아. 물러나 줘야겠다.”

주주총회때 왕회장(정주영명예회장)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세력확대를 시도한 것이 화근이었다. 32년전 그날처럼 정세영(鄭世永)회장은 이번에도 형님의 결정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뜻이 안맞아 떠날 때 목까지 차오르는 아쉬움은 참기 어려웠다.

정주영과 정세영.

두사람은 친형제이면서 현대그룹을 오늘의 거대재벌로 키운 최고의 사업 파트너이자 동지였다. 두형제의 콤비플레이는 그룹이 고비에 처할 때마다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32년간의 동지 관계는 이제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두사람은 지금 형제애를 식힐 만큼 냉엄한 현실에 마주섰다.

57년 미국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청년 정세영의 꿈은 대학강단에 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 한창 건설업으로 기반을 잡은 형 정주영으로부터 회사일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한시적’이라는 생각으로 달려갔던 세영의 의도는 빗나갔다. 그길로 영원한 ‘현대맨’이 돼버린 것이다. 형과 함께 공사현장을 누비면서 어느덧 그는 대학교수의 꿈을 접었다.

그리고 10년 뒤. 현대자동차와의 ‘숙명적인’ 만남이 찾아왔다. 건설업으로 승승장구하면서 무언가 다른 유망업종을 찾고 있던 정주영은 자동차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그는 4명의 아우 중 정세영에게 자동차를 맡겼다. 얌전해 보이지만 묵묵한 실천력과 그 속에 숨어 있는 강한 집념을 보았기 때문이다.

정세영은 형의 기대를 잘 따라줬다. 자동차회사 설립은 공장부지 매입부터 가시밭길이었지만 정세영은 혼신을 다했다.

정주영은 회고록에서 “그때 심성이 곧고 착한 세영이가 고생을 많이 해 머리털이 많이 빠졌다”고 안쓰러워했다.

정세영은 “자동차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매달린 끝에 76년 한국 최초의 독자모델인 ‘포니’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 자신은 국제적으로 ‘포니 정’이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그룹이 커지면서 인영 순영 상영 등 다른 형제들은 줄줄이 현대를 떠나 독립했지만 세영은 끝까지 형의 곁을 지켰다.

87년 70을 넘어선 정주영은 그룹 회장직을 고사하는 동생에게 넘겨줬다. 혹자는 ‘정세영 시대’가 열렸다고 했지만 정세영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96년 그룹회장을 조카(정몽구)에게 물려줄 때도 정세영은 홀가분했다.

그러나 자신의 ‘분신’인 현대자동차에 대한 애착만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해답을 쥐고 있는 형 정주영은 별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지만, 동생은 지금 입을 다물고 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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