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씨,광주CBS 대담]『세상은 진보하고 있다』

  • 입력 1998년 9월 1일 15시 45분


정부의 8·15 특사로 석방된 「얼굴없는 노동자시인」 박노해씨(본명 朴基平)가 1일 오후 국내 언론과는 처음으로 CBS광주방송과 특별대담을 가졌다.

출소후 고향(전남 고흥) 방문차 광주에 들른 朴씨는 이날 오후 방송된 특별대담에서 출소에 따른 소감과 金大中정부에 대한 평가, 현 사회에 대한 시각, 향후 작품활동 등에 대해 솔직한 심경을 피력했다.

다음은 朴씨의 대담내용.

-8년간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특사로 나온 소감은.

▲수배생활 7년, 감옥생활 8년해서 15년만에 처음으로 세상에 돌아왔다. 평소에 꿈에도 그리던 가족들과 한 밥상에서 저녁밥을 먹는 소원이 성취돼 말할 수 없이 기쁘고 감사하다.

-15년 전에 비해 많이 달라진 점은.

▲우선 길거리에 핸드폰이 눈에 많이 띄어 정보화가 빠른 속도로 진척됐다는 것을 느낀다. 또 비록 IMF로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내가 구속될 때만 해도 全斗煥 盧泰愚 군사독재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정권교체이후 가치관이 많이 변해 세상은 진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광주를 방문한 소감은.

▲광주하면 늘 잊혀지지 않는 목소리가 있다. 그것은 5·18당시 전남도청에서의 마지막날 저녁, 공수부대의 진격을 눈앞에 두고 도청을 사수하던 사람들이 자리를 떠날 것인가 아니면 지킬 것인가 목숨을 건 고뇌와 결단을 하던 자리였다.(잠시 눈물) 그때 구슬픈 목소리로 한 여자가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요. 우리는 광주를 꼭 지킬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요」하고 외쳤다. 그 소리는 지금도 내 가슴 깊은 곳에 메아리치고 있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나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게 했던 힘이었다.

-새벽마다 기도를 한다는데 요즘 주된 기도제목은.

▲감옥에 있을 때 독방벽에 세 장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하나는 기아로 죽어가는 북한어린이들, 또 하나는 실직당해서 노숙하고 있는 우리 노동자들, 다른 하나는 남극의 빙산이 떨어져나가 녹아내리는 사진이었다. 이 세가지가 우리 시대에 가장 긴급한 문제고 우리 사회 모순의 핵심이다.나는 이런 문제들과 함께 金대통령의 건강에 대해 매일 기도를 올린다.

-국민의 정부에 대한 평가는.

▲현 정부가 갖고 있는, 어떤 가시적인 개혁의 성과나 시스템적인 개혁의 업적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이 땅에 정의가 살아있고 진실은 반드시 부활한다는 교훈을 주었다는 점이다. 민주화운동을 하고 진보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빨갱이로, 급진분자로 사형을 받고 감옥에 가고 하던 현대사의 아픈 억눌림이 일거에 해방되는 그런 감격이 바로 金大中정부가 갖고 있는 진정한 가치라고 본다.

-현 정부의 개혁작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정말 열심히 노력은 하고 있으나 지금은 개혁하겠다는 좋은 의지보다는 개혁할 수 있는 능력이 더 필요한 때다. 개혁의 성과에 대한 성급한 판단보다는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이 필요한 때이며 金大中정부의 개혁이 실패할 경우 朴正熙식의 강력한 독재를 바라는 민심기류가 형성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준법서약서를 제출하게 된 배경은.

▲원칙적으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준법서약서 제도에 반대하나 어떤 법과 제도가 새롭게 출현했을 때 법과 제도 자체보다 법과 제도가 가리키는 현실의 실체가 중요할 때가 있다. 나는 양심수들의 석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국민들로부터 양심수가 고립되는 것을 우려했기에 준법서약서를 쓸 수 밖에 없었다.

-향후 작품활동 계획은.

▲감옥에 있는 동안 많은 기도와 성찰, 그리고 치열한 공부를 해왔다.이제야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책상과 펜을 갖게 됐다. 과거에는 공장에서 쉬는 시간과 철야때 피곤해서 쓰러지면서도 잠깐 쓰고 또 수배중에 쫓겨다니면서 쓰고 했기 때문에 내가 쓰고 싶은 글들을 맘껏 쓰지 못했다.요즘의 바쁜 일정이 끝나는 내년쯤부터 본격적인 집필활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좋은 시와 산문,그리고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과 핵심적인 과제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들에 대해 성실하게 써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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