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억원과 염주 한 벌.
도심 속의 수행사찰 길상사(吉祥寺)로 새롭게 태어난 1천억원대의 옛 요정 대원각(서울 성북구 성북동)을 시주하고 김영한(金英韓·81)여사가 받은 선물은 염주 한 벌이었다.일평생 일군 재산을 아낌없이 부처님께 내놓은 그는 14일 길상사 개원식에서 법정스님이 고귀한 뜻을 기려 목에 걸어준 평범한 염주 한 벌을 정성스레 쓰다듬으며 소녀처럼 좋아했다.
조계종 원로스님 및 불교신자와 천주교 김수환(金壽煥)추기경 등 4천여명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염주 한 벌을 받은 김여사는 법정스님의 「무소유」정신을 실천한 것이 그렇게 기쁜 듯 마냥 행복해 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그는 이날 귀빈석 맨 앞자리에 앉아 개원식 장면을 지켜봤고 직지사 조실 관응(觀應)스님의 법어에 이어 맨 먼저 부처님 앞에 헌화하는 기쁨도 누렸다.일반인의 예상과 달리 김여사는 불교신도가 아니다. 삯바느질로 다섯 자녀를 먹여살리는 홀어머니의 고생을 지켜보다못해 권번(券番)에 들어가 가무의 명인으로 장안 한량들의 애를 태우던 「사교계의 꽃」이었다.
30년대 조선시단의 촉망받는 시인이었던 백석(白石)을 만나 3년간 「짧고 진한」 사랑을 나눴으나 그의 월북 이후 당시 첩첩산중이었던 성북동 골짜기에 대원각을 세워 장안의 명사를 접대하던 「한많은 여인」이기도 했다.
그가 7천여평의 대원각 재산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10년 전. 평소 법정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이 스님이라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은 그러나 「무소유」의 수행질서를 내세우며 한사코 사양하다 96년 『이것도 시절 인연이니 할 수 없다』며 시주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김여사는 지난 여름 큰 수술을 하면서 마지막 남은 1백억원대의 부동산을 자신의 사후 과학발전에 써달라는 유언도 공증해 놓았다.
길상사 개원식에서 김여사는 시종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말을 했다.
『저는 배운 것이 많지 않고 죄가 많아 아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불교에 대해서는 더더구나 아무 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말년에 귀한 인연으로 제가 일군 이 터에 절이 들어서고 마음 속에 부처를 모시게 돼서 한없이 기쁩니다. 저의 남은 한으로 이 절의 종을 힘껏 치고 싶을 뿐입니다』
〈오명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