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앨프리드 마셜과 변형윤

  • 입력 1997년 11월 8일 09시 23분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마음」. 한 평생을 지탱했고 이끌어주었던 한 구절이다. 여기에는 앨프리드 마셜(1842∼1924)과의 운명적 만남이 있었다. 해방후 서울대 상대에 들어가면서 나는 당시 영국의 케임브리지대를 경제학의 메카로 만든 학자 마셜에게 빠져 들었다. 그의 저서를 밤잠을 설쳐가며 탐독하고 그 학문적 깊이에 경외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다 1885년 마셜이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되면서 한 취임사를 우연히 접하게 됐다. 취임사의 마지막 구절이 바로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제자를 기르겠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접하는 순간 내 가슴속에 커다란 격랑이 이는 것을 느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석학이 「인간」이라는 화두를 놓고 겪었을 고민이 녹아있는 이 말이 이후 내 인생의 소중한 행동지침으로 자리잡을 줄이야…. 드디어 70년 9월 제2차 세계계량경제학회에 참석하면서 학생시절 그토록 그리던 케임브리지대에서 10일간 머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발표회 등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틈틈이 마셜도서관을 찾고 마셜이 거닐던 거리를 돌아보며 그의 숨결을 느꼈다. 효율뿐만 아니라 형평이라는 가치를 중시한 마셜의 면모를 단적으로 대변하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마셜은 어느날 동료와 경제학의 논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런던의 빈민가인 이스트앤드에 갔다 왔느냐』고 상대방에게 물었다. 그 사람은 물론 한번도 그 근처에 가본 적이 없노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셜은 이스트앤드의 주민들이 그렇게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무능탓으로 볼 수 없으며 오히려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던 사회구조적 모순을 지적했다고 한다. 나는 80년 군부정권의 탄압으로 서울대 교수직에서 해직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학자로서 웅크리고만 살 수 없었던 것은 마셜의 그 한마디 때문이다. 회색일 수밖에 없는 이론. 거기에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은 그는 여전히 내 마음속의 거인으로 살아 있다. 〈변형윤·서울 사회경제학회 이사장 정리〓한정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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