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T 3인의 애증관계]DJ-TJ 첫만남서『의기투합』

  • 입력 1997년 11월 4일 19시 54분


국민회의의 김대중(金大中·DJ)총재, 자민련의 김종필(金鍾泌·JP)총재와 박태준(朴泰俊·TJ)의원이 한데 뭉친 이른바 「DJT연대」는 다시 한번 『정치판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말을 실감케하는 일대 「사건」이다. JP와 TJ는 7년10개월여 전인 90년 1월, 당시 노태우(盧泰愚)대통령 및 김영삼(金泳三·YS)통일민주당총재와 손을 잡고 3당합당을 결행한 주역들. 그 후 시차는 있었지만 모두 YS에게 팽(烹)을 당한 JP와 TJ가 이번에는 갖은 우여곡절 끝에 DJ와 손을 잡았고, 이는 「또다른 3자야합」이라는 비판이 뒤따르는 이유가 됐다. 세 사람은 6일의 3자 회동이 최초의한자리 만남일정도로 직접적인 연(緣)이 짧다. 특히 DJ와 TJ간의 정치적 대화는 월드컵 한일예선전이 열린 지난달 28일 「도쿄회동」이 최초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 『이젠 「YS식 실정(失政)」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그 회동을 계기로 「DJT연대」에 가속이 붙을 만큼 의기투합했다. 지난해 「4.11」총선 직후부터 공조관계를 시작한 DJ와 JP는 널리 알려진 대로 평생을 「정적(政敵)」이나 다름없게 지낸 사이다. 특히 JP는 92년 대선 당시 DJ에게 「용공혐의」를 씌웠던 당사자. 그러나 이제는 DJ의 「용공혐의」를 벗기는 일에 앞장서게 된 처지다. JP와 TJ 역시 「박정희(朴正熙)문하생」이라는 점에서는 오랜 기간 동지였다고 할 수 있으나 개인적으로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가깝게는 92년 민자당 경선 당시 JP가 YS 지지선언을 한데 대해 TJ는 심한 배신감을 느낄 만큼 거리감이 컸었다. 〈김창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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