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기업인]私교육의 선두 「대교」 강학중 사장

  • 입력 1997년 7월 21일 07시 55분


국내 사교육(私敎育)시장의 선두주자인 대교가 설립된 것은 지난 76년. 일본의 구몬을 수입한 「한국 공문수학연구회」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공문은 우리나라 특유의 교육열을 타고 급속히 성장했다. 그러나 공문은 어느날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다. 80년 7월30일 정부의 과외 전면금지조치가 발표된 것. 그것은 사교육시장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공문도 와해 위기에 몰렸다. 4천여명이던 직원이 썰물처럼 떠나가버려 2백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때 대교는 「승부수」를 던졌다. 학습지를 들고 학생을 찾아가는 「가정방문식 교습법」으로 전환한 것이다. 「불법과외」를 절묘하게 비켜간 이 아이디어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공문 선생님」에 대한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퍼지면서 회사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사교육 시장의 위축된 분위기는 오히려 「독주」의 바탕이 됐다. 『대교는 위기를 맞을 때마다 이를 정면돌파, 오히려 기회로 전환했습니다』 姜中(강학중)대표는 대교의 급성장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눈높이」라는 친숙한 이름도 사실 위기의 산물이었다. 91년 한국시장이 커지자 일본 구몬측은 직영체제를 구축하려고 했다. 대교는 이 때도 과감했다. 구몬과 결별하고 아예 「공문」에서 「눈높이」로 브랜드를 바꿔버린 것. 『내부에서도 눈높이라는 이름에 대해 반대가 참 심했어요. 15년간 써온 브랜드명을 포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데다 어색하다는 이유에서였죠』 그러나 「눈높이」 모험은 대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눈높이는 금세 유행어로 자리잡으며 대교의 이미지를 한층 끌어올렸다. 「독립」 이후 2년 연속 90% 이상의 성장을 보이는 등 신장세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90년대 들어 14배의 초고속성장을 기록했다. 강사장은그러나『외형적성장만이 아니라 「속」이 알찬 기업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강사장의 말대로 대교는 부채비율이 100%를 조금 웃도는 알찬 재무구조를 자랑한다. 그러나 강사장이 강조하는 것은 그보다도 「즐거운 직장」이다. 『우리 회사에는 두가지 눈높이가 있습니다. 눈높이 선생이 있고 「직원 눈높이」가 있어요』 눈높이 직원 가요제, 호프데이, 임직원 에어로빅 경연제 등 어느 회사보다 다채로운 「직원만족」 행사는 모두 직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것. 직원 재교육비도 매출액 대비 기준으로 대기업에서 최상위권에 속한다. 강사장은 『점차 멀티미디어 등 사업 다각화에 나서 2010년에는 30대 그룹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매출목표는 5천억원. 〈이명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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