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인득 벽산그룹 창업주,극장운영 돈벌어 건설업 진출

  • 입력 1997년 7월 11일 08시 04분


고 金仁得(김인득)벽산그룹명예회장은 극장사업에서 출발해 작년기준 매출 1조8천억원대의 16개 계열사를 갖춘 벽산그룹을 일으켜 세웠던 재계 원로. 그룹 이름인 벽산(碧山)은 그의 아호를 딴 것이다. 1915년8월 경남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에서 金尙壽(김상수)씨의 7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지난 34년 마산공립상업학교 졸업과 동시에 금융조합에 입사,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한달 봉급이 21원에 불과했지만 장차 큰 사업을 위해 「10년간 1만원(현재 1억원에 해당)을 모은다」는 결심아래 회사숙직을 도맡아 하는 등 피나는 노력과 내핍생활로 9년6개월 뒤 퇴사할 무렵 8천9백원을 모았다. 그뒤 부산 동아극장 지배인으로 일하다 6.25가 진행중이던 51년 동양물산을 창립, 극장사업에 뛰어들었다. 극장사업은 날로 번창해 얼마안가 서울 단성사 등 전국 주요 도시에 17개의 극장을 소유한 「극장왕」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62년 「사업보국(事業報國)」을 내걸면서 잘나가던 극장사업을 돌연 정리하고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빚더미에 올랐던 한국스레트(현 ㈜벽산의 전신)를 인수한 뒤 한국건업(벽산건설 전신) 벽산정보사업 등을 창업하면서 사세를 확장, 오늘날의 그룹을 일궈냈다. 지난 92년 벽산건설이 시공중이던 신행주대교 붕괴사고로 그룹이 타격을 입었을 때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었으나 적극적인 조언으로 「위기」를 무난히 수습했다. 〈백승훈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