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예기자] 연극계 사람 치고 공종태(48)라는 이름을 모르면 「간첩」 취급을 받는다. 작가도 연출가도 배우도 아니다. 그저 연극에 미쳐 대기업 간부자리를 박차고 나와 11년째 비디오 카메라를 메고 연극판을 쫓아다니는 자칭 「연극전문 촬영기사」다.
그동안 찍은 연극은 모두 8백50여편. 서울에서 공연되는 연극의 90% 이상을 찍는다. 그 뿐만 아니라 연극관련 행사나 세미나, 연극인 모임, 연극인 장례식 등에서도 그의 비디오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돈 한푼 받지않고 하는 일이다.
촬영한 연극필름은 복사를 해서 공연한 극단에 나눠준다. 공연 앞뒤의 리허설 스케치와 분장실에서 배우들이 장난치는 모습, 공연장 전경 그리고 뒤풀이까지 담고 배경음악을 깔아 한편의 연극 드라마를 만들어준다.
이를 위해 집에 필름 편집기까지 갖추고 있다. 연극에 빠져 사느라 결혼도 잊었다. 그가 연극 촬영을 시작한 것은 87년, 후배의 공연을 찍어주면서부터. 꽃 보내고 술 사주는 것보다 공연을 비디오로 찍어주면 연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화면을 돌려보니 재미가 있어 다른 극단의 문도 두드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디오 카메라를 놓을 자리값까지 계산해서 티켓과 프로그램을 3개씩 구입해야 했지요. 「이상한 놈이다」 「여배우하고 친하게 지내려고하는짓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도 많았지만 촬영편수가 1백편이 넘어서면서부터는 연극계 식구로 받아들여 줍디다. 이제는 안찍어주면 섭섭해하면서 부탁들을 해와요』
그는 서울 동숭동에 대관료가 싼 소극장을 마련한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93년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여의도에 음식점을 차렸다. 장사는 잘됐고 돈도 적잖게 모았으나 주식투자에 실패, 수억원을 날리고 말았다. 지금은 경복궁 전철역 부근에서 조그마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소극장 마련의 꿈은 「그 언젠가」로 미뤄졌지만 그는 오늘도 비디오 카메라를 메고 동숭동을 향하고 있다. 앞으로 연극박물관이 세워지면 갖고 있는 비디오 필름은 모두 기증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