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안병무박사, 신학계의 큰별 「행동하는 신앙인」

입력 1996-10-22 20:03수정 2009-09-2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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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鍾求기자」 한국신학계의 큰 별이 사라졌다. 민중신학과 한국신학 정립에 평생 을 바친 원로신학자 안병무박사(74)가 지난 19일 세상을 떴다. 『진정한 신학은 삶의 현장에서 억압받는 민중과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나라마다 역사가 다르듯 신학도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는 우리의 신학이 필요하다』 안박사의 삶은 민중의 눈으로 성서를 읽고 민중의 입으로 구원을 말하는 「실천적 신학」 「신학의 한국화」 「행동하는 신앙인」으로 이어졌다. 기존신학의 패러다임을 1백80도 뒤바꾼 민중신학은 신학의 본고장인 독일에서 많 은 연구자들이 박사논문 주제로 삼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1922년 평남 안주에서 태어나 간도 용정중학에서 윤동주 문익환과 더불어 키운 민 족의식이 그를 「신학의 한국화」로 이끌었다. 해방후 서울대 사회학과에 진학, 기 독교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 56년 독일에 건너가 신학박사학위를 받고 65년 귀 국했다. 곧 한국신학연구소를 설립, 당시 서구일변도이던 신학계 풍토에서 우리 역 사와 사회적 현실에 맞는 「한국신학」을 주창했다. 그는 「행동하는 신앙인」이었다. 그가 53년 설립한 향린교회는 70, 80년대 반독 재민주화운동의 근거지 역할을 했다. 유신시대와 5공때 한신대 교수직에서 두번이나 해직된 안박사는 76년 3.1민주구국선언으로 1년반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제자인 김성재 한신대교수는 『함석헌 장준하선생의 사상맥을 이으며 평생을 고난 의 십자가를 지고 살다간 「민중신학의 아버지」』라며 스승을 받들었다. 「해방자 예수」 「갈릴리아의 예수」 「역사앞에 민중과 더불어」 등 2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평민당 부총재를 지낸부인 박영숙씨와 1남. 입적한 성철스님과 3천배 없이 무시로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외부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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