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 선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시점에
“권한 더 늘려달라” 제안하는 헌재 ‘민망’
대법원 협력 없이 재판소원 완성 어려워
헌재가 먼저 ‘범위-시행 시기’ 조정할 때
정원수 부국장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하면 헌법재판소가 제4심이 될 수 있고, 헌법이 정한 대법원의 최고 법원성에도 위반된다.” ‘1987 헌법’ 개정으로 이듬해 헌법재판소를 설립할 때 대법원은 ‘재판소원’에 대한 사법부 입장을 정한 뒤 국회에 전달했다. 당시 여소야대 국회는 대법원의 의견을 반영했다.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받는 경우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는 헌재법은 이때 만들어졌다. 그 조항은 38년째 그대로다.
우리 헌재가 모델로 삼고 있는 곳은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다. 우리 헌법 격인 독일 연방기본법에는 법관과 법률에 의한 재판 절차 등 재판 관련 사안이 헌법소원 대상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헌법소원의 대상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헌법에 없는 부분은 헌재의 권한 밖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고, 헌재 출범 때 법률로써 재판소원이 제외됐다. 이것이 ‘법원의 재판은 헌재가 손댈 수 없는 성역이냐, 아니냐’는 우리 법조 영역의 오랜 쟁점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독일 연방헌재는 전체 사건 10건 중 9건 이상이 헌법소원 중 재판소원이다. 독일처럼 우리도 법원의 재판 과정에 당사자의 위헌법률 심판 제청을 허용하고 있지만 최종 제청권은 법관에게 있다. 반면 재판소원은 국민이 직접 청구할 수 있는 데다 위헌적 법률의 적용 및 적법 절차 준수 여부까지 법원 밖에서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다. 이게 막혀 있어서 입법·행정권과 달리 사법권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헌재는 주장해 왔다.
헌재의 설명처럼 우리도 법원의 재판이 헌법소원 대상이 된다면 외부의 견제 때문이라도 재판이 더 충실해질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분명히 있다. 헌법적 관점에서 공권력을 통제한다는 헌재 설립의 취지를 생각하면 헌재를 두지 않을 것이라면 몰라도 헌재가 있다면 그 제도의 핵심인 재판소원을 무시하긴 어렵다. 학계에서도 재판소원에 동의하는 의견이 적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제도가 왜 시행되지 않았을까. 헌재의 위상이나 우호 세력이 대법원의 그것들에 못 미쳤기 때문일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선 구조적 이유다. 헌재는 사법 영역을 대법원과 양분해 왔다. 그러나 헌재가 법률상 대법원의 판결을 취소할 수 있게 되면 헌법심으로 부르든지, 초상고심이라고 하든지 명칭과 관계없이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외부에 의해 뒤집힌다. 국회가 만든 법률을 무효로 선언하고, 위헌 정당을 해산시키고, 현직 대통령까지 파면한 헌재가 입법, 행정을 넘어 사법권의 꼭대기에 오르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상 변화가 생긴다. 문제는 헌법재판관 전원이 3년 내에 집중 임명되고, 정권이 교체되면 헌재 권력이 전면 교체되는 일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위상에 맞게 좀 더 공정하고 안정적 판단을 내릴 수 있으려면 독일처럼 극단적 후보를 배제하는, ‘국회 3분의 2 이상의 인준 동의’와 같은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 헌재 소장조차 재판소원에 대해 “개헌으로 하는 게 더 선명하고, 논란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헌법의 문제는 헌법으로 해결해야 뒤탈이 없다.
그다음은 현실적 이유다. 재판소원이 시행되면 대략 매년 1만 건 정도의 재판소원 사건이 접수될 것이라고 한다. 헌재는 지금도 매년 약 1400건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국가기관이든 사건을 많이 접수한다고 권한이 비례해서 강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을 덜어냄으로써 힘이 더 커지는 역설적 현상이 생긴다. 대표적인 게 사법부다. 매년 5만 건의 사건이 대법원으로 몰리면서 이로 인한 사건 처리 지연, 처분 과정을 알 수 없는 이른바 심리불속행 기각의 남발이 사법부 불신을 불렀다. 이대로라면 대법원이 허우적대고 있는 난제를 헌재가 곧 마주하게 될 수 있다.
이런 구조적, 현실적 이유에도 여당은 이달 안에 재판소원 허용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려고 한다. ‘사법 혁명’에 가까운 일인데, 유예기간 없이 공포 즉시 시행된다. 최소한의 준비기간이나 헌재의 판결 취소 이후 상황을 대비한 논의조차 없다. 공교롭게 두 차례 대통령 파면에 대한 ‘선물’로 헌재가 권한을 확대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시점인데, 헌재는 거꾸로 ‘법원의 판결’이 재판소원 대상이라는 여당의 개정안에 ‘판결 이외의 재판을 포괄하지 못한다’며 ‘법원의 재판’으로 수정하자는 의견을 내 관철시켰다. 민망한 모습이다.
헌재의 주요 결정은 다른 국가기관이 협력할 때 완성된다. 헌재가 자신의 위상과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순간, ‘헌재를 죽이는 법’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헌재가 적용 범위를 정교하게 다듬고, 시행 시기를 조정하자고 먼저 제안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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