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있는 용기[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82〉

  • 동아일보

“돛을 올려. 돌아가자.”

―기예르모 델 토로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는 죽은 개구리 뒷다리에 전기 자극을 주니 꿈틀대는 것을 보고 ‘동물전기’를 발견한 해부학자 루이지 갈바니의 실험에서 모티브를 얻어 18세에 희대의 명작 ‘프랑켄슈타인’을 썼다. 이 소설은 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창조가 어떤 비극적 결말을 가져오는가를 상징하는 작품이 됐다. 죽은 시신들의 조각을 모아 인간을 창조하겠다는 욕망은 결국 괴물을 낳고, 그 괴물은 그를 창조한 인간의 삶을 산산조각 낸다.

여러 차례 리메이크된 이 작품을 멕시코 출신 명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재해석했다. 꽁꽁 얼어붙은 바다에 발이 묶여버린 선장과 항해사의 의견 충돌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항해사는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 없다며 돌아가자고 하지만 선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얼음을 뚫고 북극에 도달하겠다고 고집한다. 그때 그 배로 조난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구조되고, 자신이 창조한 기막힌 괴물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도 괴물도 또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 파괴해 버린 비극적인 이야기를.

원작에서는 괴물이 흉측한 외모 탓에 천대받지만, 이 영화에서는 ‘빅터’라는 말만 반복하는 낮은 지능 탓에 버림받는다. 이 설정은 여러모로 지금의 인공지능(AI)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 같은 지능과 감성을 갖춘 AI를 꿈꾸지만 그것이 부를 비극을 경고하는 느낌이랄까. 가짜가 진짜 경험을 대치하고, 이를 진짜처럼 여기며 살아가게 하는 괴물을 우리는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빅터와 괴물의 이야기를 듣고 난 선장은 마음을 돌려 항해사에게 말한다. “돛을 올려. 돌아가자.” 그저 앞으로만 나가려 했던 그는 드디어 돌아갈 용기를 낸다. 편리와 효율이 덕목이 된 기술의 시대. 무언가 잘못됐다면 멈추고 돌아갈 수 있는 용기 또한 필요하다. 기술이 삶을 산산조각 내기 전에.

#프랑켄슈타인#기예르모 델 토로#메리 셸리#루이지 갈바니#동물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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