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인사 18명이 상업용 앱인 ‘시그널’에 단체 대화방을 만들었다. 부통령, 백악관 비서실장, 안보보좌관, 국방장관, 국무장관,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이 망라된 이 대화방에서 이달 13일 친이란 성향의 예멘 후티 반군을 공격할지 여부가 논의됐다. J D 밴스 부통령이 난색을 보였다가 국방장관이 공습을 고집하자 동의로 돌아섰다. 이틀 뒤 국방장관은 이 대화방에 폭격 2시간 전부터 공습 계획을 올렸고, 작전 후엔 빌딩 붕괴 등 폭격 성공 사실을 공유했다.
▷여기엔 심각한 보안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온라인 월간지 ‘디애틀랜틱’의 편집장이 이 대화방의 19번째 참여자로 13일 초대됐고 이들의 논의 과정을 다 지켜본 것이다. 이 매체의 제프리 골드버그 편집장은 24일 관련 내용을 보도하며 “(대화방 참여자들은) 외부 민간인이 들어온 사실조차 몰랐던 데다가 군사용 보안 기능이 없는 상업용 앱(‘시그널’)을 써서 극비 군사 계획을 노출했다”고 지적했다.
▷“민간 앱이 해킹됐다면 미군 조종사 목숨이 위태로울 뻔했다”는 지적이 ‘시그널 게이트’ 로 번지면서 워싱턴이 발칵 뒤집혔다. 보도 하루 만에 상원 정보위가 소집됐다. 소환된 CIA 등 정보당국 책임자들은 “대화 내용에 군사 기밀은 없었다” “백악관 조사 중에는 답할 수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트럼프의 참모들은 “야당 성향 기자의 트럼프 비판일 뿐”이라며 의미 축소에 급급했다. 언론인을 대화방에 초대한 사람은 마이클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확인됐다. 육군 특수부대(‘그린 베레’) 대령 출신인 왈츠는 하원의원 시절 골드버그 편집장과 알고 지냈다고 한다.
▷논란이 커지자 디애틀랜틱은 “군사 기밀은 다루지 않는다는 보도 원칙이 있지만, 이번엔 독자의 판단을 구한다”며 2차 보도에 나섰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공격 당일 오전 11시 44분에 “F-18 출격. 13시 45분 1차 타격. 목표인 테러범은 평소 위치에. MQ-9 드론도 이때 출격”이라고 올렸다고 한다. 공습 2시간 전에 공격 수단은 물론 공습 예정 시간을 공개한 것이다. 외부 민간인이 이를 퍼뜨렸거나 해킹됐다면 어땠을까. 후티 반군에게 대공포 격추를 시도할 기회를 줬을 수 있다.
▷이들이 왜 정부 보안 채널을 안 썼는지, 언론인을 왜 초청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분명한 건 트럼프 안보라인 전원이 기본적인 보안 상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보도 후에도 기본적인 사실 관계조차 부정하면서 오히려 언론을 공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는 트럼프가 충성파만 찾는 바람에 최고위직을 맡기에는 경험과 경륜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입증된 셈이어서 더 뜨끔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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