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尹측 “지시대명사로 안 쓴다는 뜻”… 문법시험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10일 23시 21분


가뜩이나 문해력이 떨어지는 요즘인데 윤석열 대통령의 말을 이해하려면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 OO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를 두고 온 국민이 국어 문법 시험을 치르고 있다. 먼저 OO 빈칸에 들어갈 목적어를 찾아보자. 그날 밤을 지켜봤다면 ‘OO’이 무엇이든 ‘의원’을 가리킨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윤 대통령 측은 보기를 교묘히 꼬아 오답을 유도한다.

▷먼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요원”이라고 했다. “인원”이라는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의 증언에 대해선 윤 대통령이 직접 “사람이라는 표현을 놔두고, 또 의원이면 의원이지 인원이란 말은 써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증언의 신빙성을 흔들려는 의도일 것이다. 이렇게 주장한 탄핵심판 변론에서 윤 대통령은 인원이란 단어를 세 차례나 사용했다. 인원을 언급한 다수의 과거 발언도 재조명됐다. 그러자 윤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가 “윤 대통령이 ‘인원이란 말을 안 쓴다’고 진술한 의미는 이 사람, 저 사람 등 지시대명사로 이 인원, 또는 저 인원이란 표현을 안 쓴다는 뜻”이라고 옹호했다.

▷석 변호사는 헷갈릴까 봐 예문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이 ‘인원수가 얼마냐’ ‘불필요한 인원은 줄여라’ ‘인원만큼 주문해’ 등에선 인원이란 단어를 쓴다고 했다. 보통명사, 즉 단체를 이룬 사람들이나 그 수를 가리키는 본래 의미로는 사용한단 뜻이다. 하지만 ‘이 인원은 싫어’ ‘저 인원이 오면 나는 안 갈래’처럼 사람을 지칭하는 지시대명사로는 쓴 적이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 쪽팔려서 어떡하나’ 발언을 두고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를 맞히던 국어 듣기평가 못지않게 난도가 높다.

▷윤 대통령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방어한 듯하지만 그야말로 엉뚱한 소리다. ‘인원’은 쓰임을 달리해 쓰려야 쓸 수가 없다. ‘인원’은 보통명사다. 원래 대명사로 쓰일 수 없다. 설령 대명사로 쓰더라도 ‘이것’ ‘여기’처럼 사물, 장소를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는 될 수가 없다. 계엄령을 계몽령으로, 내란을 소란이라고 해서 국어사전을 펴게 하더니 문법도 다시 공부할 판이다. “평화적 계엄” “경고용 계엄” “계엄 형식을 빌린 호소” 등 뜨거운 아이스커피 같은 모순된 단어로 위헌, 위법이라는 계엄의 본질을 희석하려는 시도의 연장선일 뿐이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두 달이 넘었다. 그간 윤 대통령과 변호인들이 현란한 법기술로 계엄 사태의 본질을 흐리려는 것을 지켜봤다. 이제는 국어 문법을 비틀어가면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그런 변명을 옮겨 적는 것만으로도 참담한 심정이다.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보일 것인가.

#문해력#증언#탄핵심판#구차한 변명#윤석열#비상계엄#법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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