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정점을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은 지속적인 번영에 꼭 필요한 전략이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는 성공의 정점을 잘 활용한 선거 전략으로 승리를 거뒀다.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후보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와 함께 전당대회에서 교체 후보로 선출된 후 인상적인 지지율 상승세를 탔다. 유명 인사들의 해리스 후보 지지 선언이 줄을 이으면서 암살미수 사건 이후 지지층을 결집한 트럼프 후보를 앞서 나갔다. 그런데 트럼프 후보는 해리스 후보가 상승세를 타고 있는 기간에 오히려 공격을 자제했다. 맨투맨식 접촉으로 경합주의 바닥 민심을 훑는 전략을 구사하며 해리스 후보의 지지율이 정점에 이르길 기다렸다. 그리고 해리스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 현상을 보이자 그제야 대대적인 네거티브 공세를 퍼부어 상황을 역전시켰다. 해리스 후보는 전국적 TV 광고에 주로 의존하며 역전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만일 그가 지지율 정점을 예측하고 경합주에 더 집중하는 등 선거운동 방식에 변화를 줬다면 선거 결과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전쟁을 치르다가 승리의 정점에 이르러 더 이상 전투에서 승리하기 어렵게 되면 전쟁을 끝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기존의 공격 기조를 유지하다가는 오히려 상대방의 역습에 패배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2차 포에니전쟁의 주역인 한니발이다. 한니발이 지휘하는 5만 명의 카르타고군은 기원전 216년 8월 칸나이 평원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8만 명이 넘는 로마군을 전멸시켰다.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군이 전멸하자 로마 원로원은 로마를 굳게 지키며 한니발과의 교전을 철저하게 회피했다.
한니발은 승리의 정점에서 전략의 변화를 모색해야 했다. 한니발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로마와 강화조약을 맺고 철수하는 것과 로마를 포위하고 섬멸전을 하는 것이다. 로마를 포위해 장기전을 시작하는 것은 원정군 입장에서 무리한 선택이었지만 한니발은 이탈리아반도 안에서 로마를 고립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이를 위해 이탈리아반도 내 로마 영향권에 있는 도시국가들을 포섭해 반(反)로마동맹을 맺고자 했다. 하지만 한니발의 반로마동맹 결성은 도시국가들의 미지근한 태도로 지지부진했고 시간만 흘렀다. 이때 기회를 보고 있던 로마군은 한니발 군대의 보급 거점인 스페인을 무너뜨리고 한니발 군의 존재를 무시한 채 과감하게 북부 아프리카에 상륙해 직접 카르타고 본국을 노렸다.
한니발은 본국의 다급한 구원 요청을 받고 허겁지겁 귀국해 자마에서 로마군과 결전을 벌였지만 크게 패했다. 결국 해외로 도피하던 중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한니발이 칸나이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바로 로마와 강화조약을 맺고 제1차 포에니전쟁에서 로마에 빼앗겼던 땅을 되찾은 후 배상금을 받는 선에서 만족했다면 승리한 장수로 남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니발은 ‘로마의 완전한 멸망’이란 현실성 없는 목표에 집착하면서 그간의 모든 의미 있는 성취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몰락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유럽을 석권한 나폴레옹은 영국마저 정복하고자 했지만 트라팔가르해전에서 패배한 후 해군력의 열세를 절감했다. 영국을 옥죄기 위해 유럽 국가들이 영국과 교역하는 것을 금지하는 대륙봉쇄령을 내렸다. 그런데 근대화를 위해 산업 기술을 배우는 데 열심이었던 러시아가 대륙봉쇄령을 어기고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과 교역을 하자 대뜸 대군을 직접 이끌고 러시아 원정길에 올랐다. 이 선택은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프랑스가 영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상대하기에는 산업 생산 능력이나 인구 규모 측면에서 볼 때 무리였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이미 승리의 정점이 지난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하고 전쟁의 길을 선택한 결과는 참담했다. 천신만고 끝에 모스크바를 점령했지만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나폴레옹은 모스크바를 점령하면 러시아가 강화를 요청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러시아는 강화를 거부하고 전의를 불태웠다. 이미 탈진한 프랑스군의 전투력이 고갈됐기 때문에 더 이상 러시아에 머무는 것은 전멸을 의미했다. 러시아군의 매서운 추격을 간신히 뿌리치고 돌아온 나폴레옹은 국내외에서 완전하게 고립됐고 황제 자리에서 물러났다.
승리의 정점에서 그 성취감에 도취돼 무리하게 공격을 지속하면 패배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한니발이 칸나이 전투에서 승리한 후 멈췄다면, 나폴레옹이 러시아에 관용을 베풀었다면 역사의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07호(2024년 12월 2호) ‘성공의 정점에선 전략을 의심하라’ 원고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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