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캉스-약케팅… 전통을 ‘힙’하게 소비하는 MZ[컬처 트렌드]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1일 2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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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수라간 시식공감 체험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수라간 음식을 맛보고 있다. 이런 궁궐 체험 프로그램들은 매년 수십, 수백 대 1의 경쟁률 속에 마감된다. 궁능유적본부 제공
경복궁 수라간 시식공감 체험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수라간 음식을 맛보고 있다. 이런 궁궐 체험 프로그램들은 매년 수십, 수백 대 1의 경쟁률 속에 마감된다. 궁능유적본부 제공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
궁궐은 역사가 살아있는 공간이다. 그 안을 걷는 것만으로도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몇 해 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궁중체험 프로그램에선 궁궐의 내밀한 곳을 방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치 왕이 된 듯 국악 공연을 즐기며 도슭(도시락의 옛말) 수라상을 맛보는 체험으로 발전했다. 경복궁 ‘별빛야행’의 경우 평시 공개되지 않는 ‘장고∼집옥재·팔우정∼건청궁∼향원정’에 이르는 경복궁 북측 권역을 전문해설사와 함께 야간 탐방하면서 고종의 이야기와 조선시대 후기 역사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야행 중 나오는 도시락은 왕과 왕비만 받을 수 있었던 12첩 반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찬합에 정갈하게 담아낸 것이다. 이 외에도 경복궁의 생과방, 수라간 시식공감, 경복궁에서의 가을나기, 창덕궁 달빛기행 등이 있다. 요새 이런 ‘궁캉스’(궁궐에서 즐기는 바캉스)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프로그램마다 매년 수십, 수백 대 1의 경쟁률 속에 마감된다. 이런 호응 속에 2023년 궁능관람객은 1400만 명을 돌파했으며, 작년보다 28.5%가 증가했다.

인기가 오른 건 궁궐뿐만이 아니다. 박물관 또한 ‘힙’한 전통 체험의 장이 됐다. 최근에는 ‘뮷즈’ 열풍이 대단하다. 뮷즈란 뮤지엄(박물관)과 상품(굿즈)의 합성어다. ‘반가사유상’ ‘금동대향로’ 등 아름다운 유물을 소재로 하여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품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인왕제색도’ ‘청자상감 구름학무늬 매병’ ‘어변성룡도’ 등을 활용한 휴대전화 케이스 등의 뮷즈도 인기 폭발이었다. 과거에도 전통문화를 담은 기념품은 있었지만 최근 뮷즈들은 인사동에서 흔히 볼 법한 기성품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품격을 살렸다. 지난해 뮷즈 판매량은 149억 원으로 2017년 69억 원에 비하면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특히 발굴 30주년을 기념해 뮷즈로 다시 태어난 ‘금동대향로 미니어처’는 발매 일주일 만에 초도 물량이 완판되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전통문화와 함께 전통시장도 인기 있다. 전통시장은 스토리와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골목길과 노포가 있는 공간이다. 코로나19의 일상 멈춤 기간 동안 젊은 세대는 동네 주변의 일상 요소들, 골목이 주는 감성, 로컬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래된 곡식 창고와 쌀 창고를 개조해 인테리어를 한 신당동의 빵집과 카페는 과거 신당동 싸전거리의 역사와 감성을 느낄 수 있게 해 손님이 몰리고 성수동, 을지로, 문래동 등은 과거 산업화 시대의 정취와 현대가 교묘하게 공존해 인기를 끌고 있다. 경동시장에 문을 연 스타벅스의 ‘경동 1960점’, 옛 탄광촌 모습을 재현해 탄광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고한 구공탄 시장’도 최근 각광을 받았다.

전통문화를 즐기는 MZ세대들이 늘며 전통 간식도 인기 있다. 약과는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용을 거듭하며 
‘약케팅’(약과+티케팅)이란 신조어까지 탄생시켰고(위쪽 사진), 인기 가수 비비의 노래 ‘밤양갱’은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동아일보DB·뮤직비디오 ‘밤양갱’ 캡처
전통문화를 즐기는 MZ세대들이 늘며 전통 간식도 인기 있다. 약과는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용을 거듭하며 ‘약케팅’(약과+티케팅)이란 신조어까지 탄생시켰고(위쪽 사진), 인기 가수 비비의 노래 ‘밤양갱’은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동아일보DB·뮤직비디오 ‘밤양갱’ 캡처
이런 전통 열풍을 주도하는 것은 흥미롭게도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이다. 이들이 전통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이들이 경험한 디지털 세계와 다른 색다르고 독특한 느낌 때문이다. MZ들이 열광하는 전통으로 궁캉스, 뮷즈뿐만 아니라 전통 먹거리인 약과, 퓨전 떡, 한방차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을 일명 ‘할매니얼’ 간식이라 부르는데, 그동안 자주 먹던 설탕 가득한 서양 간식들에 비해 건강한 식재료를 토대로, 할머니가 주시는 간식의 힐링과 솔푸드 느낌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가장 핫한 K간식 약과는 ‘약케팅’(인기 있는 약과를 사기 위한 티케팅)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누룽지, 인절미, 마늘, 검정깨 등 전통 식재료에 현대적 트렌드가 가미된 제품들이 개발돼 뉴 솔푸드로 주목받고 있다. 급기야 노래까지 등장해 가수 비비의 ‘밤양갱’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커버곡을 양산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둘째, MZ세대는 자신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창조하는 특성이 있다. 그런데 이런 취향을 혼자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유함으로써 타인과 연대를 만들어 가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 그런 그들에게 해마다 높은 경쟁률 속에 마감되는 왕실 문화 체험 프로그램은 그 희소성으로 인해 SNS에서 ‘플렉스’하기에 좋은 콘텐츠이며, 체험의 감동을 전한다는 행복감도 느낄 수 있다. 또한 발매 후 단기간 내에 마감돼 버리는 뮷즈도 그 희소성 때문에 SNS에서 플렉스와 소통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셋째, MZ세대들은 체험을 중요시한다. 한 예로 디지털 세대인 만큼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데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쇼핑 장소나 과정에서의 체험을 좋아하기 때문에 핫한 쇼핑점을 찾아다닌다. 더현대서울이나 스타필드 수원 등이 대표적으로 MZ세대의 타깃이 된 공간이다. 전통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왕실 문화 체험이나 궁캉스, 전통시장 체험 역시 너무나 소중하고 호기심을 자아내는 특별한 체험이기 때문에 MZ세대의 열광은 당연하다.

넷째, MZ세대는 역사를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과 결합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기성세대는 사극, 역사 다큐멘터리, 유물 등을 통해 역사를 받아들인 반면에 젊은 소비자들은 현대 상품과 결합한 역사를 소비하고 그걸 ‘신선한 콘텐츠’로서 인지한다. 뮷즈가 대표적이고, 전통주인 막걸리에 과일이나 허브를 첨가해 다양한 변형을 꾀한 제품들 역시 그 사례다. 개량 한복도 마찬가지인데, 세계적 걸그룹 ‘블랙핑크’는 노래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 피날레 부분에서 세련된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크롭톱(허리선 아래로 기장이 짧은 상의) 스타일 저고리와 과감한 문양이 큰 화제였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2024년 3월 현재 12억 건이 넘는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즉, MZ세대들은 전통문화의 현대적 변용에 열광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전통이 또 어떤 변용을 거쳐 계속 숨결을 이어갈지 기대하게 하는 부분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
#궁캉스#약케팅#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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