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쏠림’ 프로야구 FA제도… 계약시 보수 상한제 등 개선책 필요[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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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익빈 부익부 FA 제도
WBC 1·2차전 졸전으로 FA 몸값 거품 논란 재점화
A등급 FA만 몸값 치솟아… 찬밥 C등급 강제 은퇴 우려도
NBA,‘맥시멈 계약’ 조건 명시… 자격 따라 상한액 미리 정해놔

강동웅 스포츠부 기자
강동웅 스포츠부 기자
《한국 야구가 일본에서 열리고 있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1, 2차전에서 졸전을 거듭하자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의 ‘몸값 거품’ 논란이 다시 팬들의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선수 전체가 아닌 일부에 해당하는 얘기지만 국가대표팀이 이번 WBC에서 보여준 경기 내용을 놓고 볼 때 ‘실력에 비해 연봉을 너무 많이 받는 것 아니냐’ 하는 지적이 나온다. 이른바 ‘연봉 대박’을 쳐온 자유계약선수(FA)들의 계약 때 보수에 상한을 두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그간의 목소리에도 다시 힘이 붙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18년 가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에 FA 제도 개선 관련 ‘떡밥’ 하나를 던졌다. FA 자격 취득 시점을 고교 졸업 선수는 9년에서 8년, 대학 졸업 선수는 8년에서 7년으로 1년씩 줄여주고 ‘등급제’를 도입하자는 내용이었다. 두 가지 모두 선수협회가 KBO에 꾸준히 제안했던 내용이지만 당시 선수협회는 ‘노, 생큐’라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KBO가 FA 계약 조건을 4년 최대 80억 원으로 제한하는 ‘FA 계약 보수 상한제’를 동시에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듬해인 2019년 3월 이대호(당시 롯데)가 선수협회 회장에 오르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전 2년 동안에는 선수협회장 자리가 비어 있던 상태였다. 선수협회는 올스타전 휴식기였던 그해 7월 15일 이사회를 열어 FA 계약 보수 상한제를 수용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 대신 이번에는 선수협회가 ‘FA 보상선수 전면 폐지’를 조건으로 내거는 바람에 KBO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KBO는 2020년 1월 21일 등급제 도입을 포함한 FA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지만 FA 계약 보수 상한제는 수면 아래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게 문제가 된 건 KBO가 FA 등급제와 함께 샐러리캡(구단별 연봉 총액 상한)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FA 등급제는 ‘보통 선수’의 이적 가능성을 높여주는 제도지만 샐러리캡은 이를 가로막는 제도에 가깝다. 실제로 샐러리캡 제도 도입 첫해인 올 시즌을 앞두고 혼란이 벌어졌다.

● 여전히 외면받는 B, C등급

선수협회가 FA 등급제를 도입해 달라고 꾸준히 요구한 건 ‘FA 미아 방지 대책’ 차원이었다. 그전에는 FA를 영입한 팀은 그 선수가 원래 뛰던 팀에 △보상선수 1명+이 선수의 전년도 연봉 2배 또는 △그 선수의 전년도 연봉 3배를 보상해야 했기 때문에 ‘준척급’ 선수도 이적이 쉽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예전에는 준(準)주전으로 뛰던 선수가 FA를 선언했다는 이유로 은퇴 기로에 몰리는 일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등급제를 도입한 2021년과 지난해 스토브리그 때는 FA 선수 30명 전원이 계약을 마쳤다. 등급제 도입으로 B등급 FA를 영입한 팀은 그 선수의 원소속 팀에 △보상선수 1명+영입 선수의 전년도 연봉 또는 △전년도 연봉의 2배만 주면 된다. C등급 FA는 보상선수 없이 전년도 연봉의 1.5배만 지급하면 된다.

그러나 올 시즌 분위기가 달라졌다. FA 자격을 얻은 21명 중 권희동(전 NC) 정찬헌(전 키움·이상 B급) 강리호(개명 전 강윤구·전 롯데) 이명기(전 NC·이상 C급) 등 4명은 프로야구 10개 구단이 모두 해외로 스프링캠프를 떠날 때까지도 새 팀을 찾지 못했다.

이명기는 지난달 14일 ‘사인 앤드 트레이드’ 형식으로 한화 유니폼을 입게 됐지만 연봉은 지난해 1억7500만 원에서 올해 1억 원(옵션 5000만 원 포함)으로 줄었다. 사인 앤드 트레이드는 이명기가 원래 소속 구단인 NC와 계약한 뒤 한화로 트레이드되는 방식이라 한화는 NC에 FA 영입 보상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달 27일 NC와 재계약한 권희동의 연봉도 지난해 1억1000만 원에서 올해 최대 1억2500만 원(옵션 3500만 원)으로 오르는 데 그쳤다. FA 계약을 맺고도 올해 프로야구 선수 평균 연봉(1억4648만 원)보다 적은 돈을 받는 것이다. 정찬헌과 강리호는 12일 현재까지도 FA 미아 상태다.



각 구단에서 이런 B, C급 선수 영입을 주저하는 건 샐러리캡 제도 도입에 따라 올 시즌부터 3년간 선수단 몸값 총액으로 114억2638만 원 이상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프로야구 10개 구단 중 4개 구단이 이보다 더 많은 돈을 썼다. SSG는 지난해 선수단 몸값 총액으로 이 기준의 2.2배인 248억7512만 원을 지출하기도 했다.

각 구단으로서는 선수단 몸값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전체 FA 21명 중 7명(33.3%)이 총액 40억 원 이상의 조건으로 계약했다. 그러다 보니 B, C급 선수에게 1억, 2억 원 투자하는 돈이 더욱 아까워진 것이다.

● NBA는 FA 보수 상한제 등 보완책 둬

프로 스포츠는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프로 스포츠 리그에 선수단 몸값 총액을 제한하는 제도가 있다는 건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게 자본주의 천국인 미국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해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개성 넘치는 선수들이 많은 미국프로농구(NBA)가 이 제도를 처음(1984년) 도입했다.

NBA 샐러리캡 제도는 ‘맥시멈 계약’ 조건까지 명시하고 있다. NBA에서 뛰는 선수는 연차와 각종 자격 요건에 따라 FA 시장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액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맥시멈 계약은 KBO가 선수협회에 제안했던 FA 보수 상한제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미니멈 계약’ 제도도 있다. 연봉이 높다는 이유로 각 구단이 베테랑 선수와 계약하지 않으려는 것을 막기 위해 사무국에서 연봉을 보조해 주는 제도다.

이렇게 샐러리캡과 함께 이를 보완하는 여러 장치를 두고 있기 때문에 NBA는 구단과 선수 모두 큰 불만 없이 샐러리캡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NBA의 성공을 바탕으로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와 북미프로아이스하키리그(NHL) 등에서도 샐러리캡을 도입하자고 각 리그 선수 노동조합을 설득할 수 있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는 선수 연봉을 일정 금액 이상으로 지급한 구단으로부터 ‘사치세’를 걷고 있다.

반면 한국 프로야구는 FA 보수 상한제를 비롯한 각종 보완책 없이 샐러리캡을 도입하면서 오히려 선수들 사이에 빈익빈 부익부가 더 심해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선수협회에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샐러리캡 도입 이후에도 비(非)FA 다년 계약을 포함해 선수 영입에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쓴 건 각 구단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동현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한국의 FA 등급제를 이대로 내버려 두면 FA를 신청했다가 사실상 강제에 가까운 은퇴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에 FA 신청 건수가 앞으로 줄어들 수 있다”며 “C등급 FA만이라도 샐러리캡 계산에서 빼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FA 보수 상한제를 도입할 경우 그 기준을 KBO 이사회만의 합의로 결정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KBO 이사회는 각 구단 대표로 구성된 모임인 만큼 선수나 팬들의 목소리는 빠진 채 구단 입장만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강동웅 스포츠부 기자 leper@donga.com
#프로야구#fa제도#보수 상한제#한국야구위원회#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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