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2월 ‘다다익선’은 화재의 위험 때문에 작동 금지를 당했다. 재가동을 위한 논의만 무성했다. 그러는 사이에 1년이 훌쩍 흘러갔다. 내가 미술관에 취임하니 크게 3가지의 견해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원형 보존, 신기술 교체, 철거. 사실 이 같은 3가지 주장은 다 가능한 일이었다. 원형 보존은 ‘다다익선’에서 사용했던 브라운관(CRT) 모니터의 단종이라는 한계와 만나고 있었다. TV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다다익선’ 당시의 모니터를 더 이상 생산하지 않게 했다. 그래서 나온 대안은 신기술을 도입해 항구적 체제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학술대회를 비롯해 전문가 자문회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을 모았다. 드디어 결론을 얻었다. 원형 보존! 철거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그래서 나는 ‘다다익선’을 미술관 소장 작품으로 등록하고 원형 보존 절차를 밟도록 했다. 그로부터 3년 동안 보존·복원을 위한 특별 조치를 거쳐야 했다. 보존 원칙은 작품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되 그럴 수 없는 경우는 새로운 디스플레이 기술을 도입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다익선’ 상층부의 작은 모니터는 액정표시장치(LCD) 등 새 기술로 바꾸었다. 1003대의 모니터, 그러니까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설치된 ‘다다익선’은 30여 년 동안 매일 8시간씩 각광을 받다가 이제 부활하게 된 것이다. 구형 CRT 모니터 1003대 가운데 737대는 수리를 했고, 266대는 교체했다. 구형 모니터를 확보하기 위해 국내외 중고품 시장을 섭렵해야 했다.

‘다다익선’은 총 4개의 채널로 이루어졌다. 분할 화면 9개의 모니터가 한 개의 채널로 이루어지든가, 3개의 채널이 대각선으로 같은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현재의 ‘다다익선’은 항상 4개의 채널이 1003대의 모니터를 명멸시키고 있다. 대개 한 사이클을 도는 데 30분가량 소요된다. 반짝반짝.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은 무수한 이미지의 명멸로 특징을 이루고 있다. 화면 전환이 너무 빨라 이미지의 숫자를 세기 어려울 것이다.
백남준은 초기 비디오 아트의 대중적 관심을 이끌기 위해 이미지의 명멸이라는 전략을 도입했다. 유목민의 생리는 항상 새로운 풍광과 마주하는 것이다. 반짝반짝. ‘다다익선’은 오늘도 과천관 로비에서 명멸하고 있다. 잠든 세상을 향해 눈 떠 있으라고 죽비를 드는 것 같다.
올해는 백남준 탄생 90주년의 해였다. 마침 ‘다다익선’ 재가동의 해여서 국립현대미술관은 ‘백남준 축제’를 마련했다.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이라는 제목의 ‘다다익선’ 관련 아카이브 전시를 비롯해 백남준의 대표작급을 대거 동원한 ‘백남준 효과’ 전시, 그리고 국제 학술대회도 열었다. 정말 백남준 축제의 과천관이었다. ‘다다익선’ 보존 처리 과정은 두툼한 백서 발행으로 국제 무대에 보고할 예정이다.
재가동과 더불어 희소식이 있다. 그동안 한국인과 거리를 두고 있었던 백남준의 맏조카이자 저작권 승계자 겐 백 하쿠다(한국명 백건)의 축하 메시지다. 나는 이 편지를 받아 보고 그동안의 어려움을 단숨에 다 날려 보냈다. 더불어 ‘백남준 효과’ 전시 개막에 즈음해 하쿠다는 다시 축하의 메시지를 나에게 보냈다. “‘백남준 효과’ 전시 개막을 축하합니다. 한국과의 관계는 백남준 작가의 미술세계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를 기리는 전시를 기획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삼촌이 때때로 한국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 미술계의 국제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그의 노력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로 만들어지게 돼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미술 잡지 ‘아트포럼’은 ‘2022년의 베스트’라는 특집에 백남준의 ‘다다익선’ 재가동을 선정했다. 본문에 자세히 소개했을 뿐 아니라 표지화(表紙(화,획))로도 선정해 올해가 명실 공히 ‘다다익선’의 해였음을 추인했다. 경하스러운 일이지 아닐 수 없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