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용관]政爭 탓에 ‘지옥의 시간’ 끝없이 이어질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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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49재… 여전히 그날의 고통에 갇힌 유족들
與野·시민단체 빠지고 정부-유족 직접 소통해야

정용관 논설위원
정용관 논설위원
“저희는 아직도 10월 29일, 그날의 아비규환 속에 갇혀 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한 분이 최근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100일 미사를 올리고 있다는 또 다른 분은 “너무 소중해서, 누가 데려갈까 봐 딸 자랑 한번 안 했는데…”라며 “제 스스로 주님께 의지하지 않으면 악마로 돌변할 것 같았다”고 했다. 지옥, 악마 같은 단어들이 귓전을 맴돈다.

참혹한 고통을 대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같을 리 없다. 유가족 중엔 정부와의 연락을 아예 끊거나 장례비 지원을 거절한 분들도 있다고 한다. 숨죽여 앓고 있을 것이다. 어렵게 목소리를 내고 유가족협의회에 참여한 데 이어 시민분향소를 만들고 영정 사진을 직접 올린 이들도 적지 않다. 어느 쪽이든 모두 가슴의 응어리를 풀지 못해 잠을 못 이루고 있는 건 분명하다.

어느덧 이태원 참사는 정쟁 단계로 진입했다. 한쪽은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탄핵을 앞세워 정권 흔들기에 나서고 한쪽은 세월호 재판을 우려한 듯 방어에 급급하다. 민노총, 참여연대 등이 주도해 만든 좌파 시민대책회의가 발족됐고, 극우 단체들은 맞불 행동에 돌입했다. 진정한 치유가 절실한 이들이 점점 정쟁의 한복판으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진상 규명 논의는 허공에 흩어지고 있다.

국가애도기간은 오래전 끝났지만 ‘치유의 시간’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체 민노총 같은 조직은 왜 여기에 끼어드는 걸까. 피켓 들고 집회하고 구호 외치고 할 게 아니라, 지옥의 고통에서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도록 온 국민이 조용한 마음의 지지와 위로를 보내는 게 상식이고 도리 아닌가. 유가족들의 슬픔을 반정부 깃발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결코 먹히지 않을 것이다.

유가족들 사이에서 “장례 끝나고 정부 측과는 대화가 끊겼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일대일’ 맞춤형 심리 지원까지 하고 있다고 들은 거 같은데 장례식 지원이나 형식적인 행정 지원 정도로 끝났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유가족 다수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 관료 마인드로 법적·행정적 처리에만 신경 쓴 건 아니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책임자에 대한 수사, 예방 시스템 재구축 등은 아주 중요하다. 다만 정부 최고 당국자가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고 지속적으로 위로하는 노력은 등한시했던 건 아닌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수습을 원한다면 여야도 시민단체도 제발 뒤로 빠지길 바란다. 정략적 사심(邪心)을 가진 이들이 분탕질에 나서면 유가족들의 ‘지옥의 시간’은 끝없이 이어질 뿐이다. 누가 뭐래도 위험을 상상하고 예측하지 못한 정부 책임을 피할 순 없다. 여러 부처에 분산된 실무자급이 아니라 정부의 최고위급 총괄 대표와 유족 대표가 단일화된 대화 채널을 열 필요가 있다. 수습 및 지원의 전 과정을 책임지고 관장할 대통령 특보 등을 임명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지 않나. 여기서 추모비나 추모 공간 등 유족들의 의견을 듣고 협의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실은 “국가의 법적 책임 범위가 정해져야 국가 배상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는 태도다.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국가 책임의 크기, 희생자의 나이와 직업 등 참으로 복잡한 문제다. 다만 분명한 건 진정한 치유는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란 점이다. 일반적으론 ‘49재’를 기해 마음의 매듭을 짓곤 한다. 창밖을 보니 한파에 눈발까지 날린다. 이태원에서 스러져간 청춘들의 영혼, 그 유가족들에게 대통령이 직접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넬 계기도 조만간 찾았으면 한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이태원 참사#이태원 49재#정쟁 단계 진입#정부-유족 직접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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