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슬픔이 반반일 때[내가 만난 名문장/임지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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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은 작가
임지은 작가
“사우다지는 사랑하는 사람, 장소, 사물을 잃어버리고 나서 느끼는 그리움을 뜻하는 말로, 여기에는 한때 사랑했다는 기쁨과 결국 잃어버렸다는 슬픔이 반반씩 섞여 있다. 슬픔에서 시작해 감사로 이어지는 스펙트럼의 중간 지점에는 바로 이 사우다지, 즉 ‘남아 있는 사랑’이 자리를 잡고 있다.” ―호프 에덜먼 ‘슬픔 이후의 슬픔’ 중

20여 년 전 딩이라는 강아지를 키웠다. 몸이 약한 강아지였다. 입원했던 딩이를 병원에서 데려오던 날 엄마와 나는 딩이가 죽을 걸 예감했다. 울다 잠든 나와 달리 밤새 깨어 있던 엄마는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직전 부엌과 내 방 앞, 현관 앞으로 비틀비틀 걸어가 한 번씩 머리를 내려놓는 걸 지켜보았다. 전부 딩이가 좋아하던 자리였다. 부엌에서 슬리퍼를 질겅이고, 내 방 앞에서 발라당 누워 있거나 현관 앞을 맴돌던 어린 강아지.

지금 엄마 집엔 호두라는 강아지가 왔다. 다시는 산 동물을 데려오지 않겠다던 다짐이 무색하게 우리는 호두를 단숨에 사랑하게 됐다. 다만 종종 과거가 현재를 기습한다. 복슬한 몸으로 온 집 안을 헤집는 호두를 보고 있자면 언젠가 딩이도 그랬던 게 불쑥 떠오르고, 그럼 뭉근히 끓이던 오일을 마신 것마냥 명치가 뜨끈해진다.

엄마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걸 안다. 얘도 그러면 어떡하지, 하고 중얼거리는 엄마의 가슴께 온도. 그 온도는 우리의 삶 속에 딩이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증거다. 동시에 우리가 그 온도로 호두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상할까?

딩이 덕에 나는 언젠가의 기쁨과 그리움, 슬픔이 그런 식으로 꾸준히 반복된다는 걸 눈치 챈다.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일은 식지 않는 명치를 갖는 일이라는 듯이. 그건 불에 덴 듯 아프지만, 호두를 껴안으며 거기 분명 슬픔 이상의 무언가가 있고 또 이어진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요즘 에덜먼의 문장을 자주 꺼내본다. 이런 게 사우다지려나, 하고.



임지은 작가
#내가 만난 名문장#호프 에덜먼#슬픔 이후의 슬픔#사우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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