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와 대화하는 셰프, 알랑 파사르[정기범의 본 아페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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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luxeat 홈페이지
사진 출처 luxeat 홈페이지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프랑스 파리에 올 때마다 레스토랑 아르페주에 함께 가는 지인이 있다. 그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이 시대 최고의 셰프 중 한 사람인 알랭 파사르(66)의 추종자다. 나 역시 파리에서 가장 창의적인 레스토랑으로 아르페주를 꼽는다.

파사르는 파리 근교에 농장을 두 개나 갖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일하는 농부를 내게 ‘아티스트’라 소개했다. 그의 농장에서 자라나는 과일과 채소들은 바이오 다이내믹 방식으로 키워진다. 이 농법은 달과 별의 움직임과 자연의 생태 리듬에 따라 농사를 짓는다.

동물을 구워내는 로스팅을 주 메뉴로 삼던 그가 2001년 돌연 죽은 동물이나 피로 더 이상 요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붉은 살의 육류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예외적으로 닭과 오리를 절반씩 잘라 이를 실로 꿰어 하나로 만든 후 짚풀로 조리하는 메뉴가 시그니처 메뉴가 됐다.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닭과 오리 정도만 요리에 사용하겠다는 셰프의 의지가 느껴진다. 파사르의 요리는 또 보통 장식으로 곁들이는 채소나 과일을 메인 요리로 다뤄 주목을 받기도 했다.

아르페주에는 매일 오전 10시경 직영 농장에서 갓 올라온 채소들이 도착한다. 셰프는 이를 확인한 후 그날의 메뉴를 정한다. 매일 장을 보는 것도 힘겨운 일인데 그날의 요리를 즉흥적으로 매일 생각해 낸다는 것은 천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매뉴얼 없이 생각이 닿는 대로 음식을 만들어 내지만 그의 요리는 세심하고 안정적인 데다 창의적이어서 경이롭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최근 파리 레스토랑계의 화두는 파사르와 그의 제자들이 이끄는 레스토랑들의 대활약이다. 다른 레스토랑들이 빠르게 요리를 만드는 기술을 전수하는 반면 이곳에서는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과 세심한 셰프의 철학을 가르친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셰프들이 그의 요리를 배우기 위해 몰려든다. 김치를 자신의 레스토랑 메뉴에 선보일 정도로 한국의 발효 문화를 사랑하는 미슐랭 3스타 셰프 파스칼 바르보, 출중한 내추럴 와인 리스트와 모던 프렌치의 섬세한 터치로 잘 알려진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셉팀, 미슐랭 2스타에 등극한 이후 한국인 셰프에게 바통을 넘겨 준 미슐랭 2스타 다비드 투탕 등이 파사르의 정신을 잇고 있다.

모든 요리가 서비스되고 디저트가 끝나갈 즈음 셰프는 레스토랑 안의 테이블을 돌며 웃음 띤 소년과 같은 얼굴로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80세까지 주방에서 요리하는 것이 유일한 꿈이라는 파사르. 오늘도 요리에 대한 그의 열정과 꿈을 응원하기 위해 미식가들이 이 아르페주를 찾는다.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알랭 파사르#파사르 정신#아르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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