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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신진우]외교안보 인사까지 번진 불편한 ‘내 편 챙기기’

입력 2022-06-23 03:00업데이트 2022-06-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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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우 정치부 차장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사석에서 만난 그는 호탕하게 한마디 했다. 머릿속에 리스트를 적어놨다고. 농담을 섞어가며 얘기했지만 눈빛에선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싸늘함만 묻어났다.

‘그’는 문재인 정부 요직을 꿰찬 인사 중 한 명이었다. 앞선 박근혜 정부 땐 (그의 표현대로라면) “핍박”받았지만 중앙 무대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금의환향해 넘치는 의욕을 ‘좋은 나라 만들기’에 쏟아부으면 좋았으련만 재기에 성공한 그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했다. “두고 보자”는 거였다. 그의 머릿속 리스트엔 ‘핍박’받던 시절 그의 경조사를 누가 챙겼고, 누가 찾지 않았는지가 차곡차곡 저장돼 있었다. 특히 A 후배에 대해선 “내가 키워줬는데 좌천되니까 명절 인사도 안 하더라”며 “배신자”란 원색적인 타이틀까지 붙여가며 블랙리스트 최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문재인 정부 인사가 어땠는지는 알려진 그대로다. 출범 직후부터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 꼬리표가 붙더니 이후에도 편 가르기 인사가 잦았다. 이런 인사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당시 그의 싸늘한 눈빛이 아른거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능력 중심 인사를 예고했다. 그런 약속이 무색하게 새 정부 출범 후 겨우 한 달 반가량 지났음에도 인사 논란이 적지 않다. 중심엔 검찰이 있었다. 이른바 ‘윤석열 사단’ 출신 검사들을 요직에 앉혀 논란을 야기했다. 이에 대한 비판에 윤 대통령은 오히려 “과거엔 민변 출신으로 도배하지 않았느냐”며 쏘아붙였다.

검찰 편중 인사를 또 지적하자고 지난 정부 얘기까지 꺼낸 건 아니다. 윤 대통령이 촉발한 ‘내 편 챙기기’ 인사가 이젠 부처·분야·직위를 막론하고 번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특히 외교안보 라인에까지 최근 “내 편, 네 편”이란 말이 부쩍 많이 들리는 건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육군 장성 출신의 한 인사는 “다른 부처에선 3류가 요직에 앉으면 부하 직원들이 힘들지만 외교안보 분야에 3류가 중용되면 나라 기둥이 흔들린다”고 경고했다. 그만큼 실력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곳이 그 자리고, 냉정하게 적임자를 가려 써야 한다는 얘기다.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에서 만난 미 국무부 당국자는 “솔직히 (당시 대통령인) 트럼프를 싫어한다”면서도 “그래도 이쪽(외교안보) 전문가는 아무나 쓸 수 없다. 그래서 트럼프가 재선돼도 난 걱정 없다”며 웃었다.

누가 봐도 끄덕거릴 만한 사람을 써야 한다. 중국몽(中國夢)에 함께할 필요는 없지만 이념에 치우쳐 중국 전문가를 배제하는 식의 ‘현실 외면 인사’는 더욱 위험하다. 소문이 조직을 망치는 건 한순간이다. 실무급에서조차 누구는 누구랑 안 친해서 물먹을 거란 식의 말이 지금 돈다는 건 위험한 징조다. 미중러일 강대국의 장기판 속 한복판에 있는 우리가 ‘상식에 어긋난’ 사람을 꽂아 쓰면 그들의 먹잇감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대남(對南) 공작·협상에만 수십 년 노하우를 갖춘 프로들이 즐비한 북한도 그 상황을 주시할지 모른다.

신진우 정치부 차장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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