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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정연욱]또 바뀌는 국정원 원훈

입력 2022-06-23 03:00업데이트 2022-06-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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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출범한 중앙정보부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모델로 삼았다. 그래서 당시 국민들은 중정을 ‘씨에(CIA)’라고 불렀다고 한다.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이 지은 중정의 모토는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였다. 정보부원은 정부를 뒷받침하는 숨은 일꾼이어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중정은 정권의 정치공작 사령부나 다름없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으로 새 출발 하면서 원훈(院訓)도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뀌었다. 그러나 김대중 국정원도 도청 활동 등으로 얼룩졌다. 원훈이 정보기관의 일탈을 막지는 못했다.

▷국정원 원훈은 정권의 운명과 함께했다. 진보에서 보수 정권으로 교체된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8년 뒤 박근혜 정부 때 다시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로 바뀌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같은 보수 정권이었지만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가 원훈 교체의 한 원인이었을 거라는 관측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해 6월 국정원 원훈을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으로 바꿨다. 이번엔 원훈석에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손 글씨를 본떠 만든 ‘신영복체(어깨동무체)’를 쓴 것이 문제가 됐다. 신 전 교수는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0년간 복역한 뒤 1988년 특별 가석방됐다. 전직 국정원 직원들은 “대북 정보활동을 벌이는 국정원에 ‘간첩글씨체’가 웬 말이냐”며 릴레이 시위를 벌여왔다. 정권교체로 들어선 윤석열 정부가 1년 만에 국정원 원훈석을 바꾸겠다고 한 이유일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평소 신 전 교수에 대해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라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 ‘사람이 먼저다’도 신영복체로 만들어졌다. 이 때문인지 문재인 정부 경찰도 경찰청장 이·취임식 등 각종 행사 펼침막에 논란이 된 신영복체를 5차례나 사용했다고 한다. 경찰 내부에서도 “신영복체는 대공수사를 하는 경찰에 맞지 않다”는 반발이 나왔다.

▷1947년 창설된 미국 CIA의 모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지금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1909년 만들어진 영국 비밀정보국(MI6)의 모토 ‘언제나 비밀’도 바뀐 적이 없다. 정파를 뛰어넘는 국가 정보기관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이제 환갑을 갓 넘긴 국정원 원훈이 이번에 또 바뀐다면 여섯 번째 원훈이다. 잦은 원훈 교체는 정권의 외풍에 휘둘린 정보기관의 흑역사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원훈 바꾸는 것보다 진정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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