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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다정하게 거듭나기를 기원함![동아광장/최인아]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입력 2022-05-14 03:00업데이트 2022-05-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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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의 승리, ‘다정함’ 덕분
법대로가 아닌 상식과 윤리 중요
태도가 경쟁력, 아니 기본이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요즘 재미있고 인사이트 풍부한 과학 책이 많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가 눈에 띄는데, 책에 의하면 수십만 년 전 지구엔 호모 사피엔스뿐 아니라 호모 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 등 여러 초기 인류 종이 있었다. 그중에 호모 사피엔스가 최종 살아남아 현재의 인간, 우리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종이 가진 ‘다정함’ 덕분이라고 한다. 강한 육체로 적을 많이 정복해서가 아니라 다정하고 협력적이었던 덕에 승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알 수 있듯이 모든 인간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공격적으로 윽박질러야 승기를 잡는다고 믿는 이들이 세상 한편엔 존재하는 모양이다.

“태도가 경쟁력이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쓴 문장이며 말이다. 작년 10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을 때 말했다. 그 전에 많은 강연에서 말했고 후배들에게 전했으며 지면에 썼다. 이 한마디를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생각나는 대로 한 말이 아니고 30년 직장 생활의 경험과 고민 끝에 도달한 생각이요, 표현이라는 뜻이다. 일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이제 막 일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도 이 말을 전하고 싶었으므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쓰고 말했다. 태도가 경쟁력이라고.

얼마 전 ‘태도가 경쟁력이다’라는 제목의 책이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우연히 저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싶어 살펴보니 아니었다. 일본어 번역서였고 표지는 처세술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안에 잠재된 재능의 씨앗을 꽃피우고 열매 맺게 하는 것이 태도’라는 뜻으로 말했으니 책은 나의 뜻과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 말을 제목으로 붙였나 확인해 보니 원래는 ‘배려’가 주 내용이었지만 ‘태도’ 콘셉트로 바꿨고 눈길 끄는 제목을 찾다가 ‘유 퀴즈’에서 보곤 갖다 썼다고 했다. 또 있다. ‘유 퀴즈’에서 내가 “태도가 경쟁력이다”를 말하는 장면, 유재석 씨와 내 얼굴이 나온 장면을 캡처해 책 홍보에 이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기까지 출판사는 내게 동의를 구한 적이 없다. 그런 출판사가 홍보엔 내가 누구고 어떤 말을 했는지 소상히 쓰고 있었다.(‘유 퀴즈’ 캡처 장면은 항의 후 삭제되었다.)

출판사에 제목을 교체해 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이미 출간된 책의 제목을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부탁한 것은, 책의 어딘가에 제목의 출처를 밝히는 등 대안을 제시해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판사가 보인 반응은 기대와 거리가 멀었다. 죄송하다는 말 대신 상표권이 있냐고 했다. 어? 상표권이 없는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조용히 넘어가야 하는 걸까? 그런데 말이다. 법은 상식과 도덕과 윤리의 일부분만 담당한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이 아닌 건 아니다. 더구나 해당 책은 ‘태도’를 말하는 책이다.

이번 일을 겪으며 두 가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첫째,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존중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법으로 보호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이 능사가 아니다. 상표권 있느냐는 말 앞에서 무력해지는 나처럼 말이다. 우리는 법으로만 살지 않는다. 우리에겐 상식과 윤리가 있고 보통 사람들의 옳고 그름은 거의 이 언저리에서 정해진다.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이, 타인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비즈니스에 이용할 땐 사전에 양해를 구하는 것이 상도의고 상식이다. 한데 이런 걸 무시하고 법적으로 문제없으니 괜찮다 하는 게 정말 괜찮은 걸까? 선진국이라는 우리 사회가 이래도 되는 걸까?

둘째, 점점 더 평판이 중요해지는 세상에서 좋은 평판을 쌓는 방법, 특히 잘못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며 평판 관리도 현명하게 하는 방법이다. 어렵지 않다. 진심을 다해 사과하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겸손하게 묻는 것이다. 세계적인 조직심리학자, 에드거 샤인과 피터 샤인 부자가 쓴 ‘리더의 질문’에도 나와 있다. 리더일수록 일방적으로 몰아붙이지 말고 상대에게 겸손하게 물어보라고! 이 또한 넓은 의미에서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맞다, 태도가 경쟁력이다. 아니, 기본이다.

인류는 ‘다정함’ 덕분에 승자가 되었다는데 잘못에 대해 제대로 인정도, 사과도 하려 들지 않는다면 아직도 다정함의 위력을 모르는 거다. 이는 자신을 위해서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언젠가는 호모 사피엔스의 일원답게 다정함으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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