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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첨단 휴대전화보다 식물이 잘하는 것[서광원의 자연과 삶]〈53〉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입력 2022-04-21 03:00업데이트 2022-04-21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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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가끔 누워서 휴대폰을 보다 보면 정신이 사나워질 때가 있다. 화면을 넓게 보려고 세로로만 되어 있는 방향을 풀었는데 화면이 제멋대로 휙휙 돌아가기 때문이다. ‘똑똑한’(smart) 스마트폰 답지 않게 정신없이 헤맨다. 사람들이 주로 쓰는 게 수직 방향이라 여기에 맞게 만들다 보니 수평 상태에서 아래-위 인식 기능이 약한 탓이다. 그래서 제 맘대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버린다.

그런데 최첨단 스마트폰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이 방향 인식을 첨단과는 거리가 먼 식물들은 아주 쉽게 한다. 냉장고 안을 꼼꼼히 살펴보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넣어둔 양파가 가끔씩 싹을 틔운다는 것을 알 것이다.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게 있다.

우리는 냉장고 문을 열면 환하게 불이 켜져 있기에 항상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문이 닫히면 냉장고 안은 완전히 캄캄해진다. 햇빛이 들지 않아 방향도 알 수 없는 암흑 세상이다. 그런데도 양파의 싹은 위로, 뿌리는 아래로 제대로 내린다. 위쪽에선 무조건 싹이, 아래로는 뿌리가 나오도록 기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걸까?

양파를 옆으로 뉘여 놓으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수평으로 나오던 싹과 뿌리가 어느 순간 싹은 위로, 뿌리는 아래로 제 갈 길을 찾아가는 까닭이다. 눈도 없고 뇌도 없는 양파가 어떻게 방향을 잘 찾을까?

비결이 있다. 뿌리 끝 세포에 있는 녹말로 된 작은 알갱이인 녹말립(綠末粒)으로 방향을 인식한다. 돌 알갱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평형석(平衡石)이라고 부르는 이 알갱이들은 세포액보다 무거워 늘 밑으로 가라앉지만 완전히 푹 가라앉지는 않는다. 이걸 주변에 있는 감각모들이 감지해 아래 위를 인식하는 것이다. 아니 이걸로 어떻게 위와 아래를 구분한단 말인가?

어렵지 않다. 지구에는 항상 중력이 작동하고 있어 무게가 있으면 내려앉는데 이쪽이 ‘아래’이기 때문이다. 반대는 ‘위’고 말이다. 그래서 뿌리 끝을 잘라내면 뿌리는 방황한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이리저리 헤맨다. 방향타를 잃은 배처럼 말이다. 아마 수 억 년을 살아오다 보니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고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싹과 뿌리를 제대로 틔우고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가 방향을 인지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속귀 속의 작은 돌들인 이석(耳石)과 주변의 감각모들이 함께 방향을 파악한다.

방향이 없으면 방황할 수밖에 없다. 삶에는 방향이 있어야 한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뇌도 없는 식물들까지 방향 파악 능력을 갖춘 건 제대로 된 방향에서만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정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이런 방향성이 아닐까 싶다. 우리 모두 더 나은 미래로 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하는 게 우선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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