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나무를 관찰하는 ‘시민 과학자’들의 연대[광화문에서/김선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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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산업1부 차장
김선미 산업1부 차장
화창했던 사월의 어느 날, 전남 구례의 화엄사 홍매화 앞에 섰다. ‘화엄사 홍매화 보기’라는 인생 버킷리스트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소원은 언제부터 왜 갖게 된 걸까. 구례에서 하동까지의 여정이 펼쳐지는 윤대녕의 단편소설 ‘3월의 전설’을 읽어서였을까. 마음의 행방을 쫓다보니 작은 단초들이 나왔다. 아파트 단지에서 듣는 새 소리와 이름 모를 꽃들…. 그들이 자연을 향한 관심을 차곡차곡 쌓게 한 것 같았다.

두 달 전 ‘서울의 새(Birds Seoul)’라는 이름의 탐조(探鳥) 모임에 나간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동네를 산책하며 계절에 따라 꽃과 나무가 변하는 걸 지켜보다가 새들이 눈에 들어왔고, 새 이름을 찾다가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이 모임을 발견했다. 서울에 서식하는 새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시민 과학자’(과학에 관심 많은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 탐구활동이었다.

이들을 만나 어린이대공원에서 오색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드러밍(drumming)’ 소리를 들었다.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는 뱁새가 그토록 귀엽게 생긴 줄도 처음 알았다. 혼자라면 ‘몰라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을 것들’을 동행한 시민 과학자들이 쌍안경을 빌려주며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한 대학생은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펴냈던 조류도감 ‘한국의 새’를 들고 새를 볼 때마다 찾아봤다.

이진아 씨(53)는 10여 년 전 당시 초등학생 딸이 새에 관심을 갖자 딸과 함께 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동네의 보라매공원에서 본 검은딱새와 큰부리밀화부리는 알고 보니 사람들이 멀리서부터 찾아와 보고 싶어 하는 새들이었다. 새에 대한 관심을 나누고 싶어 2018년 시작한 게 ‘서울의 새’다. “관심이 중요한 것 같아요.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 함부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겠죠.”

저술과 강연을 통해 알음알음 알려진 시민 과학자들도 있다. 도시 생태에 관한 책을 지속적으로 펴내는 최성용 작가, 뒷산의 새를 그리는 이우만 화가…. ‘한국의 아름다운 노거수(老巨樹)’라는 책을 펴낸 김대수 씨(72)도 시민 과학자다. 호텔리어 생활을 은퇴한 후 전국의 노거수를 찾아다니며 관찰하고 기록했더니 한 권의 책이 됐다. 문화재청이나 산림청 홈페이지를 찾아야 알 수 있는 나무 정보들을 계절별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나무는 씨앗이 떨어진 장소를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내잖아요.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가지가 부러지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오랫동안 버텨온 나무들에 존경심이 듭니다.”

천년고찰 화엄사를 오가는 길에는 삼백 살 넘은 홍매화뿐 아니라 천년 된 산수유나무, 꽃송이가 눈처럼 날리는 섬진강변의 벚꽃, ‘눈물처럼 후두둑’ 지고도 남은 동백꽃도 있었다. 올해 쌀쌀한 봄 날씨로 꽃이 늦게 피느라 의외의 꽃 대궐을 볼 수 있었다. 버킷리스트에 매달리느라 비 내리는 3월에 억지로 찾아갔더라면 없었을 풍경이다. 꽃만 그럴까. 대전제를 세우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소중한 것들을 놓칠 때가 있다. 작은 씨앗이 자라 노거수가 되고, 작은 소통과 참여가 모여 대의(大義)가 된다. 그걸 봄의 자연이 가르쳐준다.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



#시민 과학자#홍매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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