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만일 정말 죽는 날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당신은 그 날짜를 알고 싶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한 달 뒤에 죽을 운명이라면, 질병에 시달리다가 50년 뒤에 죽을 운명이라면 오늘 그 사실을 알고 싶은가? 나는 절대 알고 싶지 않다. 정해진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불확실한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매년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을 보고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역술인을 찾는다. 자신의 미래를 미리 알면 현재를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것이 확실하고 예측 가능하고 정해져 있다면 오늘의 우리는 행복해질까?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한 달 뒤에 죽을 운명이라면 오늘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평소에 하고 싶던 일을 남은 한 달 동안 실컷 하면서 신나게 살게 될까, 아니면 한 달밖에 못 산다고 원망하면서 한 달 동안 괴로워하다가 죽게 될까. 그런 인생은 조금은 무섭게 느껴진다.
우리 삶의 일부분을 불확실성으로 남겨두는 일. 불확실성을 하나하나 확실성으로 바꾸어 가면서 열린 가능성으로 하루하루 살아내는 일. 예상하지 못한 나쁜 일이 생겨도 그것조차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내는 일.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그 불확실성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일. 이런 요인들이 우리의 오늘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싶다.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