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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만일 내가 죽는 날을 알게 된다면[삶의 재발견/김범석]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입력 2022-04-01 03:00업데이트 2022-04-01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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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선생님 저는 이제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 생명 연장 목적의 항암 치료를 하다 보니 암 환자분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다. 심지어 역술인인 암 환자조차도 자신은 언제쯤 죽을 것 같은지 묻는다. 그러나 의사도 정확히 모른다. 대략적인 평균이라는 것은 있지만 평균은 어디까지나 평균일 뿐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 평균수명이 80세라고 해서 모든 남자가 80세가 됐을 때 죽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에 의사의 예측은 대부분 빗나간다. 잔여수명이 1년쯤이라고 생각한 환자가 5년 더 살기도 하고 5개월 만에 눈을 감기도 한다. 그러니까 평균이란 말 그대로 다양한 경우의 환자들을 살펴본 결과 중간값이 대략 1년 내외라는 식일 뿐이다.

그런데 만일 정말 죽는 날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당신은 그 날짜를 알고 싶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한 달 뒤에 죽을 운명이라면, 질병에 시달리다가 50년 뒤에 죽을 운명이라면 오늘 그 사실을 알고 싶은가? 나는 절대 알고 싶지 않다. 정해진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불확실한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매년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을 보고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역술인을 찾는다. 자신의 미래를 미리 알면 현재를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것이 확실하고 예측 가능하고 정해져 있다면 오늘의 우리는 행복해질까?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한 달 뒤에 죽을 운명이라면 오늘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평소에 하고 싶던 일을 남은 한 달 동안 실컷 하면서 신나게 살게 될까, 아니면 한 달밖에 못 산다고 원망하면서 한 달 동안 괴로워하다가 죽게 될까. 그런 인생은 조금은 무섭게 느껴진다.

미래를 다 알고 불확실한 것이 없게 된다면 사람들은 아마도 미래를 바꾸려는 노력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열심히 노력하면 운명이 바뀌곤 한다. 인생은 늘 모르는 길이고 걷다 보면 꽃길도, 가시밭길도 마주치기 마련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이지만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이야말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며 우리의 현재 삶을 값지게 만드는 요인이 아닌가 싶다.

우리 삶의 일부분을 불확실성으로 남겨두는 일. 불확실성을 하나하나 확실성으로 바꾸어 가면서 열린 가능성으로 하루하루 살아내는 일. 예상하지 못한 나쁜 일이 생겨도 그것조차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내는 일.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그 불확실성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일. 이런 요인들이 우리의 오늘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싶다.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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