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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음식의 재발견, 무엇과 어떻게[삶의 재발견/김범석]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입력 2022-04-22 03:00업데이트 2022-04-22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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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선생님, 암에 걸렸는데 무얼 먹어야 하나요?” 외래를 볼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질문이니, 그간 수만 번은 들었던 질문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지를 놓고 엄청나게 고민한다. 점심때에도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한참 고민하지 않던가.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이유는 많다. 그동안 몸에 안 좋은 것을 아무거나 막 먹어서 건강을 망친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 이것을 먹어야 한다 저것은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 주변의 참견, 귀도 얇아지고 심적으로 의지할 곳은 없어지는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 먹는 거라도 제대로 먹어야겠다는 결의 등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무엇을 먹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먹느냐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은 환자분들이 먹을 것에 관해 질문할 때 ‘어떻게 먹을지’를 설명해 주곤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며 즐겁게 먹을 것, 예쁜 접시에 담아서 먹을 것, 잔잔한 음악과 함께 편안하게 먹을 것,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을 것,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것. 이렇게 먹어 보시라고 말씀드린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이상하게 여긴다. 그래서 홍삼을 먹으란 말인지 먹지 말라는 말인지 그것부터 빨리 답해 달라고 한다.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무관심하다.

‘무엇을 먹는가’와 ‘어떻게 먹는가’의 차이는 크다. 아무리 비싼 식당에서 고급 요리를 먹더라도 불편한 사람과 먹는 경우라면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던 경험들이 다들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어떻게’를 무시하고 ‘무엇’에만 방점이 찍힌 식사는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다.

남은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를 묻는 사람은 수없이 많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를 묻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얼마나 더 사는지 남은 삶의 양(量)보다 어떻게 사는지 삶의 질(質)과 내용도 중요한데 대부분의 암 환자는 남은 삶의 양만 묻는다. 그러면서 정작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생명이 늘어난다면 무엇을 더 하고 싶은지 되물어볼 때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저 남은 삶의 양이 많지 않음을 원망하고 슬퍼하며 남은 삶을 허망하게 보내기 쉽다.

‘무엇’에 방점이 찍힌 삶과 ‘어떻게’에 방점이 찍힌 삶은 많은 것이 다르다. 어떻게와 과정에 무관심한 채, 무엇과 결과만을 바라보는 삶은 대개 안쓰럽다. ‘무엇’보다 ‘어떻게’에 집중해 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내려갈 때라도 봐야 하지 않겠는가.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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