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사지휘권 남용 문제지만 훈령으로 ‘폐지’하는 건 위헌적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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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 측은 그제 “새 정부에서는 1차적으로 훈령을 개정해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 요건을 엄격히 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당선인이 수사지휘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만큼 사실상 폐지에 가까운 요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훈령은 하급기관만 구속할 뿐이다. 하급기관 공무원이 훈령을 위반해도 징계의 대상이 될 뿐이고 위법이 되지 않고, 그 훈령도 법원의 위법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검찰청법은 수사지휘권을 규정할 뿐 그 행사 요건에 대해 따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지 않았다. 위임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면 위법이 된다. 그런 것을 위법심사를 회피할 수 있다는 이유로 대통령령보다 낮은 단계의 훈령으로 정하겠다는 것이니 그 발상 자체가 위헌적이다.

이런 발상은 위헌·위법성을 따지기도 전에 실질적인 의미도 없다. 윤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해 훈령을 만들지 않아도 수사지휘권에 반대하는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는 법무장관이 대통령의 뜻에 반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상황을 상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훈령은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해 바꾸거나 없애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에 계속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미애 박범계 두 법무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남발함으로써 큰 혼란을 초래했다. 박 장관은 ‘한명숙 재판 위증 의혹’과 관련해 헛다리를 짚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남용의 당사자이면서도 수사지휘권 폐지에 대놓고 반발하는 모습이 볼썽사납다.

그렇다고 수사지휘권 폐지만이 옳다는 주장도 논리적 비약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법체계를 가진 독일과 일본에는 수사지휘권이 규정돼 있다. 그와 함께 법무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 수사 결과에 따라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중 한쪽이 책임지는 관행도 정착돼 있다. 우리나라는 그런 기제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수사지휘권의 자의적 행사를 법으로라도 막을 필요가 있는 건 사실이다. 다만 그런 규정은 국회에서 검찰청법을 바꿔 만들어야 합헌적이고,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적용될 수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수사지휘권 남용#훈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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