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상준]사상 초유의 사전투표 대혼란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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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준 정치부 차장
한상준 정치부 차장
정확히 한 달 전인 2월 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야 의원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김세환 사무총장을 상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확산 상황에서 치러지는 3·9대선 투표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지금 오미크론 상황은 2년 전 총선 당시와 확연하게 다르다”(더불어민주당 이형석 의원), “확진자 수가 너무 많아지고 있다”(국민의힘 이영 의원) 등의 우려였다. 당시 여야는 대선 레이스에서 치열하게 맞붙고 있었지만, 행안위에서만큼은 투표 관리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한목소리를 낸 것.

이에 대해 선관위는 자체적으로 추산한 수치를 꺼내들며 문제없다는 태도를 이어갔다. 당시 김 사무총장은 “수치적으로 정밀하게 (계산을) 해봤다”며 “(확진자) 100만 명이라고 하는 최대치가 1만4400개 투표소에 분산된다”고 했다. 당시 김 사무총장은 왜 1만4400개 투표소를 언급했을까.

3·9대선의 사전투표 투표소는 총 3552곳, 그리고 본투표 당일 투표소는 1만4464곳이다. 선관위는 확진·격리 유권자에 대한 연장투표가 실시되는 본투표 당일만 신경 썼을 뿐, 정작 사전투표에 대한 고려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셈이다. 그 결과 우리가 지켜본 것처럼 5일 초유의 사전투표 대혼란이 발생했다.

뒤늦게 선관위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고, 9일 본투표가 막을 내렸지만 이번 사전투표 혼란은 철저하게 되짚어야 할 문제다. 당장 84일 뒤에 또 선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선은 전국적으로 단 한 명을 뽑는 선거다. 유권자들은 1장의 투표용지만 받는다. 하지만 6월 1일 열리는 지방선거는 광역자치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자치단체장, 기초의원을 뽑는 선거다. 전국적으로 당선자도 많고 투표 방법도 대선에 비해 훨씬 복잡하다.

만약 6월 지방선거에도 이번과 같은 혼란이 발생할 경우 그 후폭풍은 걷잡을 수 없이 클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대선과 달리 지방선거에서는 불과 2, 3표 차로 당선자가 결정되는 경우도 있었다”며 “그나마 선관위는 지방선거가 아닌 대선에서 호되게 당한 걸 다행으로 생각하고 철저히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도 선관위만 질타할 것이 아니라 법령 개선, 예산 지원 등 국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당장 ‘1투표소 1투표함’과 ‘유권자가 직접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다’는 두 가지 법령의 충돌이 이번 혼란의 원인이 됐던 만큼 여야는 법령 개정도 고민해야 한다. 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당을 받고 일하는 투표 사무원의 처우 개선도 국회가 해결할 몫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정권마다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에서도 우리 국민은 선거는 공평하고 투명하게 치러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전투표 대혼란은 그 믿음에 작은 균열을 냈다. 선거에 대한 작은 불신의 씨앗이 심길 소지를 준 것이다. 불신의 씨앗이 싹트지 못하고 소멸되도록 선관위도, 국회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한상준 정치부 차장 alwaysj@donga.com


#사전투표#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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