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애나’, 한국의 ‘MZ세대’[동아광장/김금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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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출신으로 성공 갈구한 드라마 속 여성
사기 행각까지 하며 상류층 맛봤지만 무너져
우린 ‘열정’ 있으면 목표 이루는 사회인가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넷플릭스 드라마 ‘애나 만들기(Inventing Anna)’는 실제 미국에서 벌어졌던 사기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스물다섯의 한 여성이 거액의 신탁자금이 있는 독일 상속녀로 자신을 소개하며 사기를 친 사건이다. 그 거짓말에 값비싼 호텔들이 숙박비를 뜯겼고, 사교계 거물급들과 월가의 화이트칼라들 그리고 은행까지 속아 넘어갔다. 애나는 자신의 가짜 이름, 애나 델비를 딴 호화 사교 클럽을 운영하겠다며 200억 원이 넘는 대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런 무모한 거짓말들이 어떻게 뉴욕의 돈을 실제로 움직였을까.

1991년생으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애나는 10대 시절 패션잡지들을 통해 세상을 배워 나간다. 그런 매체들에는 상품화된 욕망을 자극하고 전시하는 수많은 명품이 있고 ‘셀럽’들의 편집된 삶이 있다. 처음 그렇게 구독자일 뿐이었을 애나는 파리의 유명 패션잡지 기자로 일하면서 그 욕망이 구현된 ‘실제들’에 한층 다가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으로 건너가 자신이 만든 상품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개인이 자신의 일상을 전시하고 편집할 수 있게 된 바로 그 시기다.

이제 애나의 삶에는 러시아에서 독일로 건너온 이민자 가정 출신이라는 자신의 과거가 없고 거짓이 탄로 나면 당장 내쫓길 신세인 자기 현실도 없다. “막대한 액수의 보이지 않는 돈이 매일 주인을 바꾸며 돌아다니는” 맨해튼의 성공한 사업가로 살아갈 미래만이 적어도 애나에게는 가장 리얼하다.

그렇다면 애나는 일하지 않으면서 하룻밤에 400만 원에 달하는 호텔 방에서 생활하며 자기 망상에 빠진 철없는 20대에 불과할까. 영화에서 애나는 자신이 사업 자금을 실제로 대출하려 했음을 법정에서 분명히 해달라고 변호사 토드에게 요구한다. 시리즈의 마지막 회차 제목이기도 한 ‘위험할 정도로 근접했는가’ 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가까이 다가갔다고 변호해 달라는 것이다. 고의성이 입증되면 형량이 높아지는데도 애나는 그렇게라도 자기 사업이 공증되는 게 우선이었다. 자신의 꿈과 목표가 그렇듯 소중했다는 점은 우리가 애나를 한낱 사기꾼으로 확정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판결이 더 중요했던 변호사는 최후 변론에서 애나를 인턴십 이외에는 별다른 스펙도 없는 풋내기로 깎아내리며, 접근의 정도를 따질 필요 없이 그 세계에 한발 들여놓지도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애나 편에서 바라본다면 과연 그 세계란 무엇일까. 삶의 목표가 있고 열정적으로 노력하면 이루게 되는 세계, 비록 지금 당장은 없지만 후에는 분명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의 성과가 준비된 세계, 그렇게 해서 부모의 도움 없이 홀로 뉴욕에 온 한 어린 여성이라도 성공할 수 있는 세계다. 어쩌면 우리가 아주 오래전부터 기대했던 세상, 선거철만 되면 누구든 나서 목소리를 높이게 되는 청년의 미래인 것이다.

국내에서는 ‘만들기’라고 옮겨졌지만 원제인 ‘인벤팅(inventing)’은 날조에 가까운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듯 각자의 거짓으로 점철된 재판이 거듭될수록 애나는 더더욱 유명세를 치르고 관련자들도 이익을 얻게 된다. 애나에 관한 기사를 쓴 비비안은 유명 기자가 되고 토드는 수임 의뢰가 물밀 듯 들어오는 호황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애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지켜봤기에 자신의 성공 앞에 부끄러움과 고통을 느낀다.

재판이 끝난 뒤 비비안은 교도소로 찾아가, 애나의 손을 잡으며 자신의 기사가 오히려 판결에 나쁜 영향을 주었다고 사과한다. 그때 “노 터칭”이라는 교도관의 경고가 들려온다. 애나는 비비안의 그런 눈물 어린 사과에 우리는 친구가 아니고 거래를 했을 뿐이며 유명인이 되었으니 만족한다고 냉소한다. 하지만 우리는 애나의 표정이 그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다는 것을 안다. 시끌벅적한 주목이 끝난 뒤의 자기 삶을 준비하면서 애나가 두렵고 외로우며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지막 면회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애나는 이번에는 자기가 비비안의 손을 잡으며 “면회 오실 거죠?” 하고 묻는다. 그때 또다시 “노 터칭”이라는 경고가 들려오지만 비비안은 대답을 피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떨까. 요즘처럼 이른바 ‘MZ세대’가 부각되는 때도 없는 것 같다. 주로 소비자들로 다루어지던 그 세대는 이제 선거판을 바꿀 표심으로 주요하게 분석된다. 그 힘으로 완성될 대선 이후의 세상에서 우리의 ‘애나’는 어떤 표정을 갖게 될까. 그 포기할 수 없는 창창한 미래들을 위한 선택의 3월이기를 기대해 본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뉴욕#애나#한국#mz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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