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윤석명]연금개혁, ‘재정 민낯’ 공개가 출발점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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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日 18년 전 단행한 연금제도 개혁
연금때문에 국가부채 늘지 않는 성과 거둬
韓 연금 관련 자료조차 공개 않는 현실
부실 재정 공개되면 개혁 미룰 수 없을 것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장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장
우리가 연금제도를 배워 온 독일과 일본은 무늬만 개혁이 아닌 진짜 개혁을 했다. 두 나라 모두 18년 전에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해서다. 자동안정장치란 연금에 부정적인 요인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연금을 삭감하는 장치다. 연금 운영에 있어 탈정치화로 가는 길이다.

노동자 지지로 당선된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배신자란 소리를 들으면서 단행한 독일의 개혁은 고통스럽긴 했으나, 과실이 확실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어서다. 일본도 비슷한 개혁을 했다. 공무원연금에 있어서도 독일은 핵심 연방공무원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민간부문 근로자와 동일한 제도로 개편했다. 은급제도, 즉 국가가 모두 부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던 일본 공무원연금도 2015년부터는 일반 국민과 동일한 연금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3분의 2가 이미 연금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했다. 이젠 선택이 아닌 룰이 된 것이다. 말이 3분의 2이지, 우리와 실질적으로 경쟁 상태에 있는 국가들 대부분이 도입했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그것도 20여 년 전에 말이다.

작년 11월 한국연금학회가 주관한 일본과의 심포지엄에서 나왔던 이야기다. 2004년 독일과 일본의 연금개혁 내용 중에, 두 나라의 자동안정장치 개념이 거의 유사해 사전에 두 나라 전문가와 관리들이 개혁 방향을 서로 의논했었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2004년 일본 개혁을 주도했던 사카모토 준이치 당시 후생노동성 연금수리과장의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서로 논의한 적이 없다. 두 나라가 제대로 개혁 방향을 고민하다 보니, 우연히도 유사한 개혁이 이루어진 것 같다는 답변 때문이었다.

2021년 OECD가 발간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1’의 출산율과 인구 고령화 속도를 비교해 보면,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몇 배 더 강도 높은 개혁을 해야 비슷한 수준의 제도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 훨씬 적게 부담하면서 훨씬 많이 받고 있다. 우리 공무원연금보다 훨씬 적은 연금을 지급하는 핀란드에서는 연금을 63세부터 받는데 그대로 둘 경우, 지금 당장 필요한 보험료는 30%를 넘어서고 2080년경에는 47%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와 유사한 연금액을 지급하는 독일은 이미 1980년의 보험료가 18% 수준이었고, 1997년 전후에는 20%를 넘었었다. 필자와 공동 연구 중인 핀란드 학자들이 최근 보내준 자료들이다.

다른 나라의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공적연금 강화란 명목으로 연금을 더 지급하겠다는 황당한 연금 개편안을 추진했었다. 할 일 많은 대통령에게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면 이처럼 참담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국가 부채가 2020년 한 해에만 100조 원 넘게 늘어났다. 참고로 독일과 일본은 자동안정장치 도입으로 인해 2004년 개혁 이후 연금으로 인한 국가부채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 제대로 된 개혁을 해서다. 우리는 국내 연금제도 중에서 가장 절망적인 사학연금조차 개혁에 관심이 없다. 국가 돈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정부의 제대로 된 관리조직이 없다 보니, 국민연금에 가입해 있던 사학연금공단 직원들이 슬그머니 사학연금 가입자로 변신했음에도 말이다.

연금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다. 대선 후보께 하는 첫 번째 부탁은 모든 연금 관련 자료를 공개하겠다는 합의를 해 달라는 것이다. 이처럼 참담한 상황임에도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의 재정계산 보고서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어서다. 연금 논의 과정에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른 나라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연금재정 상태의 민낯이 드러나면 연금개혁 논의가 훨씬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 눈앞에 보이는 충격적인 수치를 보고서도 개혁을 반대할, 그 정도로 간이 큰 기득권 세력은 없을 거라서 그러하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연금 재정계산 결과에 대한 불신 해소도 필요하다. 재정계산 보고서를 타국으로부터 검증받는 캐나다와 핀란드처럼, 우리의 연금 재정계산 내용을 외국의 전문가로부터 검증받겠다고 대선 후보들이 합의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 같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장
#연금개혁#재정 민낯 공개#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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