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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정원수]‘조던’ 회장의 살인 고백

입력 2022-01-21 03:00업데이트 2022-01-2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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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매년 500여 명이 총기 사고로 숨진다. 가해자와 피해자 중엔 10대가 많다. 1965년 9월 30일 밤에도 그랬다. 폭력 조직의 일원이었던 16세 소년 래리 밀러는 라이벌 폭력 조직이 친구를 죽이자 보복에 나섰다. 그런데 식당 근무를 끝내고 귀가하던 18세 청년에게 총을 쐈다. 이 청년은 친구의 죽음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술에 취해 엉뚱한 희생양을 찾은 것이다. 당시 피해자 청년에겐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두 살 된 아들, 곧 태어날 딸이 있었다.

▷살인죄로 체포된 밀러는 4년 반을 복역했다. 20대 초반에 출소했지만 총기 강도를 몇 차례 저질러 5년을 더 감옥에 있었다. 하지만 긴 수감 생활은 그에게 전화위복이 됐다. 재범예방 프로그램으로 고교 졸업 자격을 취득했고, 출소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MBA 과정을 마쳤을 때가 38세였다. 유명 회계 법인에 취직할 기회가 생겼지만 면접을 하면서 전과를 얘기해 탈락했다.

▷이때부터 그는 살인 전과를 숨겼다. 몇몇 식품회사에서 임원 경력을 쌓은 그는 1997년 나이키로 옮겼다. 전설적인 미국프로농구(NBA) 선수인 마이클 조던의 브랜드를 담당하는 ‘나이키 조던’ 회장을 현재 맡고 있다. 그는 ‘나이키 조던’을 40억 달러의 회사로 키웠다. 나이키 본사가 있는 포틀랜드 연고의 NBA 구단주도 지냈다. 흑인 기업가로 뒤늦게 성공한 것이다.

▷“나를 안에서부터 괴롭혔다.”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던 밀러는 지난해 10월 스포츠 전문매체와의 인터뷰에서 56년 전 살인 사건을 고백했다. 그는 ‘점프’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집필해 최근 출간했다. 하지만 인터뷰 때도, 자서전에서도 피해자를 ‘한 흑인 소년’이라고 지칭했고, 먼저 피해자 유족을 찾아가 사과하지도 않았다. 피해자 유족 중 한 명이 우연히 인터뷰 기사를 읽고, 가해자인 밀러에게 연락했지만 밀러의 답이 없었다고 한다.

▷73세의 밀러는 최근 고향을 두 차례 찾아가 피해자 유족 등을 만나 피해자의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계획을 논의했다. 유족은 “이제 밀러를 적으로도, 친구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그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 책으로 비밀은 죽었다’고 썼다. 하지만 비밀이 사라졌다고 용서가 그 자리를 바로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사람의 실수가 인생 최악의 실수이더라도 나머지 인생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밀러의 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교정시스템이 없었다면 그의 성공 신화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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