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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글로벌 이슈/신수정]늘어나는 독재자들, 퇴조하는 민주주의

입력 2021-11-17 03:00업데이트 2021-11-17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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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오른쪽)과 로사리오 무리요 대통령 부인 겸 부통령. 노골적인 야권 탄압과 부정선거 논란 속에 7일 치러진 니카라과 대통령 선거에서 이 부부는 연임에 성공했다. AP 뉴시스
신수정 국제부 차장
이달 7일 중미 국가인 니카라과에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76)은 4연임에 성공했다. 1985∼1990년 대통령을 지냈고 2007년 재집권한 그는 2027년까지 20년 연속 집권하게 됐다. 그의 부인이자 현 부통령인 로사리오 무리요(70)는 2017년 대선에서 남편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당선됐다. 이번에도 부부는 함께 선거에 나서 ‘남편 대통령, 아내 부통령’ 통치가 5년 더 연장됐다. 과거 반(反)독재 운동에 앞장섰던 오르테가는 권력을 잡게 되자 독재자로 변했다. 그는 선거 전에 유력한 야권 인사들을 대거 체포해 선거에 못 나오도록 했다. 투표가 끝난 뒤에는 개표 현황도 공개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르테가가 4연임에 성공함으로써 중남미에서 쿠바와 베네수엘라에 이어 세 번째 독재국가가 등장했다고 전했다. WSJ는 정치 전문가들을 인용해 중남미의 정치 지형이 동유럽, 터키, 필리핀처럼 서구식 민주주의에서 이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베네수엘라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민주주의가 무너졌고 브라질, 멕시코, 엘살바도르에서도 대중 인기에 영합한 독재자들이 나오고 있다.

‘밀레니얼 독재자’로 불리는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40)은 갱단 범죄와 부패 척결을 향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며 2019년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청바지와 가죽 재킷을 즐겨 입는 젊은 포퓰리스트는 점차 독재자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대법원을 압박해 대통령 연임 금지에 관한 헌법 규정을 무효화시켜 2024년 대선에서 연임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9월에는 트위터 계정의 자기소개를 ‘엘살바도르의 독재자’로 바꿨다. 암호화폐 비트코인을 법정 통화로 채택한 것을 비판한 이들을 겨냥해 쓴 것이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부켈레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보다 더 걱정스러운 속도로 민주주의를 해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66)과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68)은 부정부패와 경제난에 시달려 온 국민들을 상대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했지만 권력을 잡은 후에는 권위주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구 ‘라티노바로메트로’가 지난해 10∼12월 중남미 17개국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가장 선호하는 정부의 형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9%가 ‘민주주의’라고 답했다. 2010년 조사에서 이 비율은 63%였다. 중남미에서 가장 큰 나라인 브라질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는 40%에 그쳤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자신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기만 한다면 비민주적 정부가 들어서도 괜찮다고 답했다. 라티노바로메트로는 중남미 국가들의 민주주의를 지탱해 온 주요 인구 집단이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거두고 무관심층으로 돌아서거나 권위주의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팬데믹은 권위주의 성향이 강한 스트롱맨(강력한 지도자)을 세계 곳곳에서 나오게 했다. 유럽 최후의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67),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69),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68)은 거대한 위기 속에서 더욱 강력한 권력을 가지면서 장기 집권의 길을 걷고 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잘 설계된 헌법 같은 제도가 아니라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라고 주장했다. 규범 중에서도 자신과 다른 집단의 의견을 인정하는 ‘상호작용’과 주어진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제도적 자제’를 핵심으로 봤다.

퇴임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67)는 지난달 독일 통일 기념식에서 “민주주의를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매일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주의 제도에서는 국민의 선거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을 뽑는다. 이들이 상식적인 규범을 가져야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있다.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들이 늘수록 권력의 중앙 무대에 올라서는 스트롱맨과 포퓰리스트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신수정 국제부 차장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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