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친구’는 오래 못 간다고?[2030세상/김지영]

김지영 마케터·작가 입력 2021-10-19 03:00수정 2021-10-19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김지영 마케터·작가
“답이… 올까?” 눈을 질끈 감고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밑져야 본전인 메일 하나 보내는 게 뭐 대수라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는데 조언을 구할 길이 없었다.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끝에 메일 주소 하나를 얻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안녕하세요, 먼저 이렇게 불쑥 연락드려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메일을 썼다. 조금이라도 답장 확률을 높일 수 있을까 싶어 사연에 사연을 덧대다 보니 그야말로 구구절절했다.

한동안 수시로 메일함을 들락거렸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가망이 없다 여기고 다시 본연의 안갯속에서 헤매던 어느 날, 회신이 왔다. “스팸 처리되어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너무 늦지 않았을까 걱정입니다.” 텍스트 너머로도 온기가 느껴지는 다정한 메일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휴대전화 번호로 끝을 맺었다. 여차여차 성사된 전화 통화. 비슷한 또래, 비슷한 커리어의 여성이었다. 홀린 듯 여쭈었다. “저녁 어떠세요?”

약속 당일, 십수 년 만에 소개팅에 임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혹시 ○○님?” 애초에 희망 분야를 매개로 찾은 연락처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잘 통할 수도 있을까. 일, 학업에서의 관심사뿐 아니라 취향까지 비슷했다. “어? 저도 그 팟캐스트 진짜 좋아해요!” 덜컥 약속을 잡고는 어색할까 후회한 게 무색하리만치, 수다는 마를 줄을 몰랐다. 중간중간 재채기를 내뱉듯 “신기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주고받았다. 고작 메일 하나로, 평생 만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낯선 이와 마주 앉아 오랜 친구처럼 식사하고 있었다. 그 저녁, 샴페인 한 병을 다 비운, 주량조차 비슷한 두 사람은 다음으로 소주를 기약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사회 친구 괴담’의 허구성을 절절히 깨닫는다. “학창시절 친구가 진짜 친구다” “사회 친구는 오래 못 간다”는 식의 이야기들. 모든 일에 때가 있듯, 소위 말하는 ‘진짜 친구’를 사귀는 데에도 정해진 때와 방식이 있다고들 했다. 그렇다면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 나의 고충을 위로해 주는 것은 당장 옆자리 동료와의 커피 한 잔이었고, 취향을 공감해 주는 것은 이렇듯 관심사를 매개로 찾아 맺은 인연들이었다. 곁에 남은 소중한 이들의 역사를 짚어보면 첫 직장부터 다음 직장, 독서 모임, 여행, 심지어는 SNS, 메일에 이르기까지 그 시기도 경로도 제각각이다.

주요기사
얼마 전 즐겨 듣는 라디오 채널에 사연이 하나 소개됐다. 마흔에 만난 두 친구의 이야기였다. 그땐 왜 이런 친구를 이제야 만났을까 생각했는데, 어느덧 수십 년 세월을 함께해 오고 있다고 했다. 인연에는 정해진 때도 방식도 없다. 다만 ‘마음’이 있을 뿐이다. 학창시절과 사회를 구분 짓는 기준은 나이나 장소가 아닌 마음, 편견과 계산 없이 주고받는 애정과 신뢰일 것이다. 그러므로 야속한 세월과 빈약한 인복, 감옥 같은 외로움을 탓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무던히 학창시절 같은 마음을 지키고 내어주는 일이다. 그리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그 마흔조차, 아직 6년하고도 2개월이나 남았다.

김지영 마케터·작가



#사회 친구#메일#학창시절 친구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