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용석]정치인들의 ‘기업 병풍’ 활용법

김용석 산업1부장 입력 2021-09-25 03:00수정 2021-09-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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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해결하겠다며 기업 현장 찾는 정치인들
홍보 위한 배경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닌지
김용석 산업1부장
정치인이라면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정치인들이 자주 등장하는 장소가 바로 기업 현장이다. 기업 입장에선 현장의 어려운 사정을 살펴준다면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 어려운 장면이 많다. 정치인들이 기업 현장을 자신의 정치 활동 홍보를 위한 배경화면 정도로 여기는 ‘기업 병풍 활용’ 사례를 정리해 봤다.

첫째, 물 들어올 때 노 젓기.

어떤 기업이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거나 이슈가 됐을 때 현장을 찾는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면 배가 쉽게 나가는 것처럼 국민의 관심이 모였으니 주목받기에 좋다. 가물 때 물꼬를 트는 자리보단 물 들어와 배 띄우는 자리가 인기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5월 22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모더나와 백신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백신 수급에 희망이 커졌다. 이 회사 존 림 사장은 귀국 직후인 25일 인천 송도의 회사를 찾아온 더불어민주당 대권 후보를 맞이해야 했다. 이튿날인 26일엔 민주당 최고위원회가 아예 삼바 제2공장에서 회의를 열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위탁생산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도 인기다. 지난해 7월 이후 지금까지 정치인들의 방문이 알려진 것만 10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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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기업에 일 떠넘기기.

한 정치인이 기업 해외 공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방문 전 현장을 답사한 보좌진은 클린룸에 들어갈 때 입는 방진복을 문제 삼았다.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방진복이 너무 구겨져 볼품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 기업 직원 하나가 다리미를 구해다가 방진복을 말끔하게 다려야 했다. 난데없이 다림질을 하게 된 그 직원은 ‘내가 여기서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방문자 안내는 기업의 일이지만 정치인의 미디어 노출을 챙기는 건 기업의 일이 아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남에게 서슴없이 시키는 것을 우리는 ‘갑질’이라고 부른다.

셋째, 기업 사정은 나 몰라라.

반도체 생산 공장은 각광받는 방문 장소다. 올 5월 한미 정상회담 이후 발길이 더욱 잦아졌다.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안보적 가치가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5월 이후 지금까지 삼성전자 화성과 평택 반도체 공장에 정치인들이 방문한 것은 모두 7차례에 이른다. 한 달에 한 번꼴 이상이다.

반도체 클린룸은 엄격한 룰이 지켜져야 하는 곳이다. 자칫 먼지가 들어가면 불량률이 높아져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최근엔 방역수칙까지 더해졌다. 정작 생산설비를 살펴야 하는 협력회사 관계자들도 쉽게 못 들어가는 클린룸에 정치인과 보좌진이 원할 때마다 들어가 떼 지어 다닌다면 일반 대중의 눈엔 경제 현장을 살피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반도체 전문가의 눈엔 황당한 장면으로 비칠 것이다.

방문 일정을 정하는 데 기업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는다. 한 정당의 대권 후보는 한 대기업의 생산 공장에 방문하겠다며 하루 전날 밤 일정을 통보했다고 한다.

하나의 단면에 불과할지 모르는 이런 사례들을 문제 삼는 이유가 있다. 의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태도이기 때문이다. 진짜로 기업 현장의 어려움을 확인하고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방문하는 사람들은 자기 일을 기업에 떠넘기거나 갑 행세를 하지는 않는다. 민생을 살피겠다는 의도는 꾸며낼 수 있겠지만 이들이 현장에서 내보이는 태도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진짜 모습은 숨기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



#정치인#기업 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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