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튜브]말러와 할리우드 영화음악 다리 놓은 코른골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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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가 전 유럽에 불안한 기운을 드리우자 1934년 미국으로 이주한 작곡가 코른골트(뒷줄 가운데)와 그의 가족. 동아일보DB
나치가 전 유럽에 불안한 기운을 드리우자 1934년 미국으로 이주한 작곡가 코른골트(뒷줄 가운데)와 그의 가족. 동아일보DB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지난달 영국 카디프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리톤 김기훈에게는 잊지 못할 순간이 있었다. 이 콩쿠르 1차 결선에서 그가 오스트리아 작곡가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에 나오는 아리아 ‘나의 그리움, 나의 망상이여’를 부르기 시작한 지 얼마 뒤 한 심사위원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 모습은 BBC TV를 통해 방영됐다.

코른골트가 널리 알려진 작곡가는 아니다. 그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30여 년 전, 영국의 한 음악잡지를 통해서였다. 기사에는 미국 할리우드 볼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었던 존 모체리의 말이 실려 있었다. 요지는 이렇다.

“말러가 살아 있을 때 그의 음악은 너무 난해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 세계는 말러에게 열광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말러에게 영향받은 후배 음악가 중 여럿이 유대인이었고, 나치가 유대인을 탄압하자 이들은 미국으로 망명해 할리우드의 영화음악가가 되었다. 코른골트가 대표한 이들의 스타일은 지금도 영화음악 주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를 통해 현대인들은 말러의 음악 스타일에 익숙해진 뒤 그의 교향곡을 듣게 됐다. 이들에게 말러는 이상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는 열한 살 때 발레곡을 쓰는 등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다.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고 오스트리아에도 불안한 기운이 뻗치자 193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할리우드에 정착한 코른골트는 1935년 영화 ‘한여름 밤의 꿈’을 시작으로 ‘로빈 후드의 모험’ 등 16개나 되는 영화의 음악을 맡아 크게 활약했다.

청년 코른골트를 높이 평가하고 도움을 준 사람 중에는 흥미롭게도 교향곡 거장 구스타프 말러와 오페라 거장 자코모 푸치니가 있었다.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말러는 10년 동안 빈 궁정오페라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세계 최고의 흥행물이었던 푸치니의 오페라를 한 번도 무대에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사이가 안 좋았던 말러와 푸치니가 코른골트를 좋아하고 도와주는 데는 생각이 같았다.

말러는 신동 코른골트에게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라는 선생을 소개해 주었다. 부인 알마가 결혼 전 음악 수업을 받았던 인물이다. 푸치니는 자기 작품의 악보를 비롯해 코른골트의 발전에 필요한 자료들을 보냈고 코른골트가 이탈리아에서 콘서트를 열면 홍보에 앞장섰다. 푸치니는 “코른골트는 자기에게 필요한 재능의 두 배를 가졌다”고 말했다.

새삼스러운 일은 코른골트의 음악에 그의 후원자들, 즉 말러와 푸치니의 음악이 짙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영화음악 평론가인 루디 벨머는 이렇게 말한다. “코른골트의 음악 스타일은 말러의 주제 발전 기법과 푸치니의 달콤하면서 도취적인 멜로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거장적인 오케스트라 기법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클래식 팬들이 코른골트를 통해 말러를 재발견한 것처럼, 세계 오페라 팬들이 푸치니에게 열광하는 것도, 슈트라우스의 교향시가 콘서트에서 인기를 끄는 것도 이 천재들의 음악어법이 영화음악을 통해 대중에게 친숙해진 것이 주된 이유일 수 있다.”

이달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푸치니가 미국을 배경으로 쓴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가 공연됐다. 이 작품의 환상적인 관현악에서 오늘날의 영화음악을 연상한 관객이 적지 않았다. 푸치니가 미국 서부 민요 스타일을 차용한 것도 이유이지만, 훗날의 영화음악이 푸치니의 관현악에서 영향을 받은 결과도 무시할 수 없다.

한 가지 우리가 또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코른골트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슈트라우스와 말러, 푸치니, 이 세 사람은 모두 독일 음악극의 제왕으로 당대 음악의 문법을 완전히 바꿔버린 리하르트 바그너를 숭배한 인물들이었다는 점이다. 말러와 푸치니의 경우 작곡 수업 시간에 이 점을 너무 드러내 선생들의 꾸지람을 듣기까지 했다.

사실 19세기 후반 등장한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대부분 바그너의 정신적 아들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할리우드의 영화음악, 특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은 바그너 및 그의 영향을 받은 거장들의 커다란 우산 아래 있다고 보아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말러#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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