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중현]세기의 이혼과 재산 분할

박중현 논설위원 입력 2021-05-05 03:00수정 2021-05-0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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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새해 첫날 하와이의 작은 섬 라나이의 호텔들은 손님을 받지 않았다. 주변 섬을 오가는 헬리콥터들도 멈췄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멀린다 프렌치와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파파라치들을 피하기 위해 모든 객실, 헬기를 전세 내버린 것이다. 소수의 친구,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리조트 골프코스에서 결혼식이 치러졌다.

▷27년여 지난 4일 빌과 멀린다의 트위터 팔로어들은 새벽에 날아든 문자에 깜짝 놀랐다. “인생의 다음 단계에서 커플로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됐다”는 이혼 고지였다.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둘은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코로나19 퇴치에 나서는 등 이상적 동반자의 전형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한다.

▷멀린다에게 1987년 입사한 MS는 첫 직장이었다. 2년 차 때 사장인 빌과 비밀 데이트를 시작했고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던 중 결혼해 전업주부가 됐다. 하지만 세 자녀를 낳은 뒤 빌과 세계 최대 공익재단을 만들면서 사회활동을 재개해 2016년엔 포보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4위에 올랐다.

▷빌은 MS 지분 1.37%를 포함해 1460억 달러(약 164조 원)의 재산을 갖고 있다. 세계 4위 부자다. ‘동등한 파트너’를 강조해온 만큼 이혼 합의금이 사상 최고액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기로 한 두 사람의 서약이 합의금 결정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관심이다. 지금까진 세계 1위 부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57)의 2년 전 이혼 때 부인 매켄지 스콧이 350억 달러(약 39조 원) 상당의 아마존 주식을 받은 게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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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부자인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72)은 1990년대 초 이혼했다가 재혼했다. 3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50)는 세 번째 부인인 캐나다 출신 가수 그라임스와 살고 있지만 할리우드 여배우들과의 염문이 끊이지 않는다.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 중에는 2012년 결혼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37)만 이혼 경력이 없다.

▷“빌과 멀린다도 회색이혼(gray divorce) 함정에 빠졌다”는 말이 미국인들 사이에서 나온다. 미국 전체 이혼율은 떨어지는데 50세 이상만 높아지는 걸 설명하는 용어가 회색이혼이다. 1946∼1965년에 태어나 개인 행복을 중시하는 베이비부머들이 배우자의 부정(不貞)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늘어난 수명과 건강 개선도 주요 원인이다. 66, 57세 부부의 결별 사유가 “함께 성장(grow together)할 수 없어서”란 게 의미심장하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이혼#재산분할#빌게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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