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발목 잡는 단세포적 정치[동아광장/이지홍]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21-03-26 03:00수정 2021-03-2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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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하게 사회 흔드는 포퓰리즘의 마수
기존 시스템 복지 공공사업 감당 한계
독립된 재정 감시로 민생 정상화해야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 정책과 공약이 난무하고 있다. 전임 시장들의 과오에 눈감은 집권여당은 국민 세금 수십조 원이 투입될 가덕도 신공항을 예비타당성 조사마저 면제시켜 주며 밀어붙였다. 충분히 예측과 준비가 가능했던 재난지원금도 선거를 앞두고 눈덩이처럼 불어나, 또 한 차례 미래 세대에 무책임하게 부담을 떠넘겼다. 모든 서울시민에게 10만 원씩 ‘디지털’ 지역화폐를 지급하자는 한 단계 진화한 4차 산업혁명형 현금 살포 공약까지 등장했다. 어쩌다 정치가 이 지경까지 왔는가.

일차적 책임은 경제정책을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는 집권 세력에 있다. 선거 전에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시켜 유권자의 환심을 사고, 선거 후에는 긴축 기조로 정책을 전환해 선거 때 퍼부은 선심의 뒷수습에 나선다. 지난해 총선 이후 급상승한 부동산세를 보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 같은 단세포적 정치 행태의 위험성을 2018년 노벨상 수상자 윌리엄 노드하우스와 여러 경제학자들은 일찍부터 ‘정치적 경기변동이론’으로 경고해 왔다.

단기 부양책으로 장기 성장여력을 높이기는 어렵다. 혁신과 성장을 위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선 오히려 경기 변동과 정책적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야만 한다. 과도한 재정 지출은 출산율이 믿기 힘든 수준까지 추락한 지금 특히 심각한 위험요소다. 이미 급격한 인구 고령화와 현 정부의 무분별한 공공 주도 경제 운영 때문에 국가부채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내년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퍼주기 정책과 공약의 수위는 앞으로 더 올라갈 것이다.

재정 포퓰리즘이 집권 세력에서만 자라고 번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쪽이 적극적인 재정 지출을 선거 전략으로 들고나오면 상대가 이를 반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며칠 전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무려 1조 원 규모의 현금 및 대출이자 지원책을 내놓았다. 선거용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 일에 구청장 전원이 동참한다고 한다. 이 중 야당 소속도 있다. 당략(黨略) 대결은 종종 게임이론을 통해 잘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 성격과 소모적 경쟁 구도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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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국을 비롯한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 구조는 거대 양당 중심의 독과점 체제다. 정당정치도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성을 띠는데, 시장과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독과점으로 인한 담합 등 불공정 경쟁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의 자기 지역구 예산 챙기기는 이미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적폐로 굳어졌다. 불요불급한 사업 예산을 전용해 코로나 지원금을 충당하는 상식적인 재정 운용은커녕 국회는 추경에 추경을 거듭하고 있다. 야당이 무기력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의심할 만도 하다.

포퓰리즘을 확산시키고 있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은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경제다. 성장을 창출하는 것이 그만큼 더 힘들고 어려워졌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이에 발맞춰 신속하게 인력과 자본이 흘러야 하는데, 최근 들어 한층 더 세진 집단이기주의와 정부의 반(反)시장적 개입 때문에 사방이 온통 꽉 막혀 있다. 어려운 성장 문제를 진지하게 논하는 것보다 그간 쌓아놓은 파이를 나눠 먹으려 허술한 논리와 간교한 말장난으로 싸우는 것이 더 쉽고 심지어 효과적이기까지 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선진국 문턱에 올라선 대한민국을 포퓰리즘의 마수(魔手)가 집요하게 흔들고 있다. 정치의 구조적 요인에 경제 상황이 더해져 문제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소신 있는 정치인도 있지만 ‘기승전 선거’만 생각하는 당리당략에 묻혀 뜻을 펴지 못하고 있다. 기존 국가 시스템으로 봇물 터진 복지 수요와 공공사업 유혹에 현명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기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포퓰리즘의 확산을 저지하고 미래를 향한 한국 사회의 전진을 견인할 새로운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지난 몇 년 검찰개혁 논란이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다. 정치가 덮고 있는 건 비단 사정(司正)기관뿐이 아니다. 이번 ‘LH 사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지만, 아직도 이 나라엔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직접 통제 아래 있는 시대착오적 경제정책과 관련 기관이 너무나 많다. 바로 여기에 포퓰리즘의 뿌리가 있다. 공수처가 다루게 될 부정부패 사건의 상당수도 여기서 터질 것이다. 독립된 재정 감시기구와 실효성 있는 재정준칙의 도입으로 민생과 경제를 정상화할 때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4차 산업혁명#발목#단세포적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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